기간: 2월26일까지 장소: 선돌극장 문의: 02-814-1678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수상한 기운이 감돈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사각의 철창이 설치되어 있다. 바닥엔 모래까지 깔렸다. 배우들은 철조망에 매달리거나 그 주위를 뛰어다닌다. 마치 지하 불법 격투기장에 온 듯하다. 불온한 분위기 속에 객석이 채워지자,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사각의 철창은 곧 싸움터로 바뀐다.
파이터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안티고네와 크레온이다. 인물에 대한 이해는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한 비극을 다룬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이디푸스왕은 운명을 원망하며 스스로 두눈을 찔러 실명한다. 그 뒤 두딸인 안티고네, 이스메네와 함께 떠돌다 절명한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죽은 이후의 이야기다. 고향 테바이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왕위를 놓고 싸우던 두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다. 새로운 권력자가 된 외삼촌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큰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몰아 그 시체를 들판에 버리고 짐승과 날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놓아둔다. 그리고 이를 거역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한다. 한데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려다 체포된 것이다. 여기서 둘의 논쟁은 시작된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극단 백수광부의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논쟁을 사각의 링 안에서 이루어지는 피 튀기는 대결로 설정한다. 국가를 위해 가족의 가치를 짓밟는 크레온과 가족을 위해 국가의 법을 어긴 안티고네. 둘의 대립은 ‘개인의 양심’과 ‘국가적 질서’란 두 입장을 대변한다.
누가 옳은가? 무대는 역동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철창을 중앙에 두고 객석이 마주 보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눈앞의 상황을 회피할 수 없게 만든다. 즉 관객은 테바이의 시민이 되어 양심과 질서의 대결 속에서 끝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쉽게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외쳐서는 안될 일이다. 무엇이 정녕 옳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 시대가 <안티고네>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는 이유이리라.
크레온 왕과 안티고네 역을 맡은 박완규와 박윤정은 극 초반부터 극적인 폭발력을 선보인다. 배우들의 집중도가 놀랍다. 다만, 상승 뒤 내려갈 줄 모르는 감정의 그래프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싸우고 지치도록 유도했으나 파국의 충격을 오히려 반감시키는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