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재미없다. 프랜차이즈 전성시대인지라 동네마다 지하철역이 있는 사거리 풍경은 붕어빵처럼 찍어낸 듯 똑같고, 젊은 배우와 가수들의 얼굴은 무엇의 전성시대 때문인지 모르지만 엇비슷한 인상이고, 사람들의 고민 역시 다채로운 것과 거리가 멀어서 돈만 있으면 뭐든 해결될 것 같은데 내가 가진 돈은 충분치 않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을 알아보는 기준은 무조건 돈이다. <시크릿 가든>의 말을 빌리면 “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기면 다 오빠”다. 며칠 전에 옛날 드라마들 얘기를 나누다, 그때 그 남자들 지금 세상이었으면 주인공 절대 못했겠다며 웃은 적도 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채시라는 끝내 배운 남자 박상원이 아닌 빨치산 최재성을 선택했고,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이 서 있던 자리는 배운 남자 박상원 곁이 아닌 결국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최민수 곁이었다. TV 앞에 앉아서 엄마와 딸이 “저러면 안돼”라고 입으로 합창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모든 게 마치 자연현상처럼 당연한 결과라고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양동근은 드라마 시작부터 전과자였다. 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긴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시험하는 최종 관문의 수문장이었는데, 이제는 그놈만 여주인공을 차지한다.
만약 한 남자가 삼십대 후반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부이고, 대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으며, 손가락이 일곱개뿐이라고 하자. 이 남자가 연애소설에 등장한다고 하자. 그는 어떤 역할에 어울릴까? 한국 드라마에서라면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해학 넘치는 조연, 혹은 속 썩이는 먼 친척, 혹은 여주인공을 추행하거나 괴롭히는 ‘남자1’ 정도였을 거다. 스웨덴에서 1998년 발표된 이후 5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스웨덴 국민 20명 중 1명이 읽은 국민 소설이 된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에서는 그가 남자주인공이다. 30대 중반의 여자 데시레는 그야말로 커리어 우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는 지성과 교양으로 하나되는, 거의 완벽한 동반자적 관계였다. 그녀는 남편 무덤에 찾아갈 때 한손에 손가락 3개가 없는 시골 남자 벤니와 자주 마주치는데, 첫인상은 거의 완벽한 혐오에 가깝다. 이 책은 이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를 보여준다. 도시의 새침데기 아가씨가 짐승남에 끌리는 이야기라고 거칠게 요약하기에는 벤니가 처한 상황이 딱할 정도로 열악하다. 그는 소 젖짜는 삶 외의 인생을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가 아내에게 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는 집을 인간 사는 집답게 만드는 헌신이다. 미적 취향은 30년 전쯤에 머물러 있고, 문화생활에는 코골이로 대응한다. 첫인상만으로는, 혹은 그가 가진 조건만으로는 절대 ‘No, No, No’인 남자를 여주인공도 독자도 사랑하게 된다. 파격적인 남자주인공에 걸맞은 파격적인 엔딩이 인상적인데, 결국 몇년 뒤 속편이 쓰였다. 모르긴 해도, 안 쓰고 버텼다가는 스웨덴 국민이 미저리로 변해 작가를 습격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