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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자들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 <하울링>
주성철 2012-02-15

“내 마음의 지하상가는 여전히 승냥이 울음으로 붐비고….” <하울링>의 늑대개를 보며 문득 ‘시인 유하’가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 얘기했던 지하상가의 승냥이가 떠올랐다. 승냥이와 늑대개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면 딱히 할 말 없지만, 거기에는 아무리 울어도 들리지 않고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않는 소외된 자들의 울음이 있다. 노나미 아사의 원작 <얼어붙은 송곳니>도 결국 여주인공 오토미치 다카코와 늑대개가 서로의 처지를 알아보는, 상처받은 자들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다. 오토미치는 가족과 직장 모두와 쉽게 화합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늑대개는 일그러진 사랑으로 길러진 복수의 화신이다. 둘 모두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같은 시에서 마치 ‘흠집 많은 중고제품들’에서나 자신의 존재를 위안받는 슬픈 존재들이랄까.

승진 때마다 후배에게 밀리는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은 순찰대 출신의 새파란 신참 여형사 은영(이나영)을 파트너로 맞는다. 고과 점수도 낮은 분신자살 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상길은 내내 은영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 사건이 계획된 살인임을 알아내면서 두 사람은 자체 수사에 나선다. 물론 그 역시 협조하에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는 은영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상길이 독단적으로 벌이는 수사다. 한편, 짐승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은영은 사체에서 발견된 짐승의 이빨 자국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모든 살인사건들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직감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피해자들의 몸에 있는 공통된 이빨 자국이 늑대개의 것임을 알아내고 그 피해자들이 과거 서로 알던 사이였음을 밝혀낸다.

<하울링>은 ‘형사 강력계’라는 전형적인 남자들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은영의 이야기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나 <비열한 거리>(2006)처럼 유하 감독의 이전작들 이 주로 남성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하울링>은 그가 축조한 세계에 처음으로 여주인공을 밀어넣는다. 그런데 은영은 원작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세상살이에 서툴고 뚱하며 불가해’하다. 물론 이전 영화들의 권상우나 조인성처럼 이나영 역시 젠더는 다르되 어딘가 어리숙한 사회초년병의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과 그 역할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헤매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주변 남성 동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은영은 적극적으로 그 조직에 속하고 싶고 일을 잘해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은영은 스스로 소외를 초래한 인물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원래 여자였기 때문에 소외된다. 원작에서 동료들은 늘 그녀를 향해 ‘알 수 없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여자는’, ‘여자라서’, ‘여자니까’라는 한마디가 숨어 있다. 그런 점에서 원작의 여주인공이 겪었던 고통은 <하울링>에서 경찰서 내부로만 한정되는 아쉬움이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혼잣말까지 나오게 할 정도로 경찰인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얘기를 시작하면 늘 싸우게만 되는 언니,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생까지 그녀는 이혼녀에 경찰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다. 극의 전개를 위한 효과적인 결정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은영의 지긋지긋한 원래 가족들은 사라졌다.

대신 유하 감독이 택한 것은 플래시백까지 시도하여 늑대개를 둘러싼 감동의 정서를 단단히 하고, 원작과는 다른 명쾌한 범인을 채택한 것이다. 그를 통해 여주인공의 고뇌와 가족의 의미 그 이상으로 ‘피해자는 가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는 또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본래의 테마에 접근한다. 그 모두가 노련하고 탄탄한 수순을 밟아나간다. 그런데 노나미 아사의 소설들이 후반부가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면, 그러니까 <얼어붙은 송곳니> 역시도 다소 엉뚱한 이가 범인이었다면, 감독은 그런 후반부의 열린 결말을 매끄러운 장르성으로 봉합하고 있다. 늑대개의 야수성이 보다 지긋지긋한 캐릭터의 희로애락으로 드러나길 바랐던 걸까. 바로 그 지점에서 유하 감독에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너무 무난하고 안정적인 장르영화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장인으로서의 노련함보다는 과감한 작가적 일탈을 보고자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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