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다큐멘터리 한편이 몬트리올을 흥분시키고 있다. 로드리귀 장 감독의 <에픽-순간의 상태>(Epopee-L’etat Du Moment)가 바로 그 영화다. 이 영화는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의 전작 <척추>(Hommes a louer)와 똑같은 소재를 다룬다. 일상적인 마약과 폭력에 시달리는 몬트리올의 게이 남자 매춘부들 이야기다. <에픽-순간의 상태>는 결코 편하게 다리를 뻗고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군데군데 뒤섞여 있는데, 절망적으로 코카인 파이프를 빨며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몸을 파는 게이 매춘부들의 거친 삶이 불편할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재미있는 건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섞여 있는 관계로 어떤 부분이 실제 촬영장면인지 혹은 허구로 설정한 장면인지 가늠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형식적 특성이 바로 감독의 전작 <척추>와 <에픽-순간의 상태>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다.
로드리귀 장 감독이 굳이 픽션을 삽입한 이유는 <척추>를 촬영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도 영화에 넣고 싶다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들과 함께 ‘레조’라는 커뮤니티를 설립해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거기 소속된 20명의 남자들이 <에픽-순간의 상태>에 모두 참여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어쩌면 감독 혼자만의 작업물이라기보다 실제 영화가 다루는 수많은 삶들이 어우러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척추>는 좋은 다큐멘터리지만 일반 관객이 참아내기 힘든 장면들이 꽤 들어 있었다. <에픽-순간의 상태>는 <척추>보다도 훨씬 불편하다. 그저 우울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짜 이야기들이 화면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감독의 영화들은 지금 다큐멘터리들이 잃어가는 카메라의 어떤 도전정신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로드리귀 장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영화와 함께 만들어진 웹사이트(Epopee.me)에 접속해보길 권한다. <에픽-순간의 상태>에 포함되지 않은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장면들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다른 세상의 절망감, 계속 보여줄 것
로드리귀 장 감독 인터뷰 -생물학을 전공했다. 왜 영화의 길로 들어섰나. =인간에겐 100년의 삶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학은 인간의 미래 아닌가. 언제든지 접하고 또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영화는 현재였다. 그래서 내 마음이 향하는 영화 작업에 뛰어들게 된 거다.
-<에픽-순간의 상태>는 왜 만들게 된 건가. =<척추>를 촬영하면서 (종이를 보여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도 영화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들이 실제 겪은 경험과 내가 원하는 방향의 영화를 접목시켜 <에픽-순간의 상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계속 사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보기 부담스러울지라도, 그들이 모르는 다른 세상의 절망감을 보여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이러한 삶도 존재하는구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