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지역구 15% 여성 공천 의무화’에 반발한 정청래 전 의원의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와, 이 언니들이 모두 이대 출신이야?”가 아니라 “와, 이 언니들이 모두 지역구에 나서는 거야?”였다. 245개 선거구의 15%면 37곳 가량이 될 터인데, 과연 쪽수를 채울 수 있을까 싶었더랬다.
정 전 의원은 비례대표를 한 여성들이 공천 할당에 편승해 유리한 지역구를 꿰차는 식으로 손쉽게 금배지를 달려고 하고, 여성 신인들이 몫인 ‘특혜’를 독식한다고 비판한다. 자신의 지역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울분’과 ‘비례대표 출신은 기득권을 버리라’는 주문은 이해한다. 적지 않은 남성 후보들도 그와 뜻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유독 한명숙 대표부터 본인의 지역구(마포을)에 나서는 김유정 의원까지 이대 출신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많이 퍼날라지고 있다. 인용의 방식을 취했다 하더라도 무엇을 겨냥했는지는 짐작된다. 특정 학교 독식에 대한 공분을 일으키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이들이 모두 이대 출신이라는 건 놀랍지 않다. 과거에는 똑똑한 여학생들이 이대에 많이 갔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남녀공학대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못해본 ‘리더’를 해본 언니들이니까. 어쩌면 이대(여대) 출신이라서 더 자질이 있는지도 모른다.
18대 총선에서 옛 한나라당은 18명, 민주당은 15명을 지역구에 공천하는 데 그쳤다. 현 새누리당의 여성의원과 민주통합당의 남성의원 가운데 누가 더 친여성적인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지루한 논쟁이다. 여전히 우리의 정치지형은 ‘생물 종 다양성’이라는 원초적 문제조차 못 풀고 있으니까. 그런 까닭에 지역구 공천 여성 할당은 여전히, 꽤나 유효하다. 문제는 정 전 의원 같은 이마저 발끈할 정도로 운영의 묘미를 못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가 애써 가꾼 텃밭이나 자격 있는 경쟁자가 있는 곳에는 마땅히 경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공천 할당이 오히려 내홍만 키워 여성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독이 된다.
정 전 의원은 16대 국회 비례대표를 하고 17대 선거 때 분당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허운나 전 의원을 모범 사례로 든다. 에그그. 너무 나가셨다. 당의 사랑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정치인 허운나를 기억 못하잖아요. 여성의 정치 진출은 이렇게나 멀고도 험난하답니다람쥐. 여성 지역구 공천, ‘꺾기도’의 지혜를 발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