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 배우들이 출연한 <컷>은 스타일만 보면 상당히 젊은 감독의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달리는 아이들>(1985)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아미르 나데리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젊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시네필을 위한 영화로도 느껴지는 이 작품은 세계 영화사 걸작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영화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려는 선언문이기도 하다. 영화가 오락이자 예술이었던 시대는 가고 영화가 오락에 불과한 현실에 절망한 독립영화 감독 슈지(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걸작 정기상영회를 통해 영화정신을 홍보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영화 제작비를 대주던 형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설사가상 야쿠자 조직은 슈지에게 형이 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던 슈지는 인간 샌드백이 되어 맞을 때마다 돈을 받기로 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영화사에 대한 자기 반영적 사고와 감독이 고른 100편의 리스트다. <컷>에는 시작, 중간, 끝에 세편의 영화장면이 비교적 길게 나온다. 처음에 등장하는 버스터 키튼의 무성 슬랩스틱 코미디 <셜록 주니어>는 <컷>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코멘트라고 볼 수 있다. 영사기사인 버스터 키튼이 잠이 들자 그의 영혼이 빠져나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명장면이다. 즉, <컷>의 상황도 버스터 키튼의 영화처럼 영화적 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간에는 가장 멋진 엔딩을 가진 영화로 <수색자>가 언급되고, <시민 케인>은 순서 없이 언급되던 100편의 걸작 리스트 최후의 한편으로 등장한다. 케인의 죽음과 무(無)라는 한자를 오버랩한 화면은 <시민 케인>과 필름 누아르에 대한 무수한 주석을 한 글자로 정리한다. 영화를 사색하는 영화, <컷>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