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씨네21>도 간략하게 다룬 바 있지만 지난 1월3일 뉴욕의 무가지 <빌리지 보이스>는 영화평론가 짐 호버먼을 해고했다. 여기서 잠깐. <빌리지 보이스>는 1955년 작가 노먼 메일러 같은 이가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만든 주간 무가지로, 한때 뉴욕을 대표하는 진보 독립언론으로 꼽히던 매체다. 그리고 짐 호버먼은 독립영화, 실험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주류 영화에 대한 신랄한 평론으로 유명한 영화평론가다. 그는 1977년부터 이 잡지와 함께해왔고 1988년에는 평론가이자 실험영화감독인 조나스 메카스와 저명한 평론가 앤드루 새리스에 이어 수석 영화칼럼니스트가 됐다. 따지고 보면 뉴욕 바깥 사람들에게 <빌리지 보이스>를 널리 알린 건 호버먼이었다. 그의 원칙주의적이고 정묘한 평론을 읽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무가지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해고는 예견된 바였다. 종이 매체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빌리지 보이스>는 2005년 뉴 타임스 미디어(현재 ‘빌리지 보이스 미디어’로 개명)라는 회사로 인수됐는데 그 직후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온라인 중심으로 매체를 재편하고자 했던 회사는 낡은 필진을 새로운 감각의 필진으로 교체했다. 잡지의 성격도 점점 가벼워졌다. 오죽하면 호버먼 스스로 자신의 해고에 대해 “충격받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이곳은 이미 내가 일하던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겠는가.
호버먼의 해고를 두고 해외에서는 ‘영화평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는 투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영화에 대한 온갖 정보가 넘실거리고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는 관객이 급감하면서 비평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는데 호버먼의 해고가 이같은 흐름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얘기다. 호버먼 또한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평을 싣는 종이 매체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구석에 몰린 느낌을 갖고 있다. 영화평론보다 커다란 무언가 때문이다. 그건 영화문화가 주변부로 내몰렸다는 얘기다.” 그의 말은 서구에선 1960~70년대, 한국에선 1990년대에 꽃을 피웠던 문화(운동)적 의미에서의 영화가 사그라지고 오로지 엔터테인먼트와 비즈니스로서의 영화만이 존재한다는 뜻일 터.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영화를 다루는 매체들은 영화 소비자들을 위한 정보 가이드의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
정말로 영화문화는 다시 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영화평론은 종언을 고한 것일까. 예술의 본령에 닿는 영화를 옹호하고 거짓에 물든 영화를 거르는 일은 무의미해진 것일까. 불행히도 지금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씨네21> 또한 그러한 거센 물살 위에서 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언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