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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형사의 원형, 부활하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영화 속 형사는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논두렁을 구르며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국영화의 무수한 형사들이 박두만에 대한 찬양을 복제로 오마주로 바꿔가며 형사 캐릭터를 유지 계승하는 동안, 그 기원이 되었던 남자는 건달과 산악인, 한강 매점의 아저씨, 뱀파이어가 되어 오히려 ‘원형’에 대한 부담을 벗고 있었다. <하울링>의 형사 상길은 <살인의 추억> 이후 단 한번도 형사 연기를 한 적 없던 그가 9년 만에 택한 형사 역할이다.

“유하 감독이 깜짝 놀라더라. 설마 송강호가 하겠나 싶었다고 하더라.” <하울링>은 늑대개가 연루된 연쇄살인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상길과 여형사 은영(이나영)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파트너십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노나미 아사의 원작 <얼어붙은 송곳니>는 단연 여형사의 심리적 변화가 부각되는 구성이다. 유하 감독 역시 이번엔 <말죽거리 잔혹사>의 거칠고 남성적인 세계 대신, 섬세한 원작의 결을 다분히 따라가려는 듯싶다. 말하자면 도전의식과 형사적 사명감을 가진 은영이 선두를 책임진다면, 두 아이를 키우는 홀아비, 승진에 번번이 물먹는 생활형 형사 상길은 그런 은영의 역할을 뒷받침해주는 지지대 역할에 그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왜 굳이 이 작품으로 떨쳐냈던 형사 역에 복귀하려고 하는가요? 우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렇다. “30대 초·중반이었다면 나도 안 했을 것 같다. 그땐 배우로서의 열정이 더 컸던 때다. 과시하고 노출하고 싶었던 그때와 달리 40대가 되고 나니 연륜이 생긴 것 같다. 깊이있는 역할, 좀더 냉정한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 나 스스로도 <하울링>을 선택한 게 기특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렇다.”

형사라는 접점으로 얼핏 박두만의 그림자를, 화려했던 시골 형사의 활약을 기대하려 벼를 게 분명해 보였는지, 송강호가 재빨리 박두만과의 절연을 선포한다. “상길은 거친 파고가 없는 남자다. 일렁이는 물을 보면 겉은 잔잔한데 검은 물밑 저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박두만이 관객에게 주었던 즐거운 서비스는 없으니 그런 점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을 거다.” 그는 오히려 굳이 감정을 드러내 설명하지 않고 심정적으로 이해시키는 <하울링>에서의 노력을 성숙하고 세련된 이 영화의 측면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하울링>의 상길, 그 변화의 지점은 관객이 직접 보고 판단할 일이다.

지난해, 우리는 송강호라는 무소불위의 배우도 흥행의 고배를 마시는 걸 경험해야 했다. 그의 연기에 대해 의심을 하는 건 무의미하지만, 그에게 어쩌면 맞지 않는 옷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생소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체험이었다. 그러나 <푸른 소금>의 고전에 대해 그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연기는 스포츠게임이 아니다. 전후반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승리를 위해 작전을 펼치는 작업과는 다르다. 내 모든 과정들이 배우 송강호의 일부분이다. 나이, 가정, 사회, 세월의 때, 이런 것들이 내 연기에도 차곡차곡 묻어 있다. 삶도 연기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민식과 설경구와 더불어 충무로의 ‘얼굴’을 대변하던 배우는 이제 배우라면 누구라도 언급하고 싶어 하는 최상의 표본이 되었다. 지금의 자신에 대해 그는 “좋게 나이가 들고 있다”고 단언한다. “배우로서 내 자신이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답게 늙어가고 있구나 싶다. 젊을 때 잘생긴 외모가 관객을 부르는 데 중요한 덕목이었다면, 나이 들어서는 삶의 깊이와 아픔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 과정에서 송강호는 입체적으로 자가발전해왔다. <박쥐>와 <푸른 소금> 그리고 아마도 <하울링>에서도 은연중에 전개될 섹슈얼한 이미지의 획득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생성된 또 다른 구획이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금의 요소다. 물론 매 작품 그의 얼굴을 미리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알려졌듯이 그의 다음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설국열차>다. 혹독한 추위가 닥친 지구에서 유일한 생존처,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체인 설국열차. 그는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함께 그 연기 각축전에 탑승한다. 3월 촬영을 앞둔 흔적으로 그는 지금 수염을 기르고 있다. 몇달간은 수염이 더 자랄 테고, 설국열차를 통솔할 그의 또 다른 얼굴이 보일 거다. 지구 마지막 순간에 남은 남자의 절박함은 배우 송강호에게 투영된 또 다른 ‘인생’이다. 이 모든 게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처럼 나이 들어가는 소중한 배우, 송강호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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