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해외통신원
[파리] 점잖지만은 않은 가짜 세계

포르노영화의 제작과정 보여주는 <섹슈얼한 관계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관객은 완성된 영화가 보여주는 ‘그럴듯한 가짜 세계’만을 보며 즐거움을 얻었던 순수의 시기를 넘겨버린 듯하다. 이제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홍보나 DVD 제작에는 이 가짜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사정없이 까발리는 ‘메이킹 오프’(Making Off) 영상을 동반하는 게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라파엘 시보니 감독의 <섹슈얼한 관계는 없다>(Il n’y a pas de rapport sexuel) 또한 이 메이킹 오프의 대세에 가담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점잖은-그럴듯한-가짜-세계”가 아닌 “점잖지만은-않은-가짜-세계”, 즉 포르노영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섹슈얼한 관계는 없다>에는 두명의 감독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인즉 이 영화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지난 25년간 포르노 배우, 감독, 제작자로 활동해온 에르베-피에르 구스타브(Herve-Pierre Gustave, 보통 HPG라고 불린다)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의 메이킹 오프 과정을 모아둔 것에서 비롯되었고, 이 수천 시간이 넘는 러시(편집용 필름)를 이용해 라파엘 시보니 감독이 편집,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면은 삼각대 위에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에피소드마다 편집을 최소한으로 줄여 전체 구조는 작은 사건 뭉치들의 연결로 진행된다. 이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관객은 영화의 제목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 진행된 특별상영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참석해 직접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그는 HPG와의 오랜 인연과 그의 재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HPG는 지난 2006년 자서전적 영화 <우리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어>(On ne devrait pas exister)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처음으로 포르노 감독이 아닌 신분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지금도 꾸준히 포르노와 포르노가 아닌 두 영화산업 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나쁜 놈임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 장 프랑수아 로제(왼쪽)와 HPG.

포르노 배우, 감독, 제작자로 활동해온 HPG -완성된 작품이 맘에 드나. =사실 상반된 감정이 있다. 먼저 영화가 포르노 산업이 무엇인지, 어떤 허상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준 것 같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영화에 비친 내가 너무 나와 닮아 있어서 불편하다. 사실 내가 좋은 사람이지만은 않잖아.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확실히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웃음)

-라파엘 시보니 감독과는 평소 친분이 깊은가. =별로. (웃음) 이번 작업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영화의 러시들은 일종의 영상 일기로도 볼 수 있다. 사적인 기록을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넘겨준 이유가 뭔가. =예전부터 내 러시들을 포르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편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시보니 감독이 제안을 했다. 주저없이 넘겼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편집을 했더라면 전혀 다른 작품이 나왔을 거다.

-현재 작업 중인 장편이 있다고 들었다. =<골반들의 움직임>(Le mouvement des bassins)이라는 장편인데, 축구선수 출신 배우 에릭 칸토나와 내가 직접 출연한다. 후반작업 마무리 중이고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