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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최민식, 살아 있네!
문석 2012-01-30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보다가 무릎을 쳤다. 주인공 최익현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연기가 너무도 절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비굴한 하급 공무원과 거만한 폭력조직의 수뇌부를 오가며 버라이어티한 연기를 펼친다. 조직폭력단의 우두머리 최형배(하정우)에게 자신이 먼 친척이라며 뻐기다 혼쭐이 난 뒤 다시 친척 어른 댁으로 불러들여 기어이 형배의 무릎을 꿇게 하는 장면의 코믹한 모습이나 매거진이 빈 권총을 휘두르다가 얻어맞는 장면의 비애 서린 모습은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얼굴 위에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제임스 갠돌피니의 얼굴이 겹쳐지기도 했다. 수많은 젊은 ‘수컷’들 사이에서 이 중년배우는 주눅 들기는커녕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든다(묵직한 뱃살이 안쓰럽긴 했지만 그게 영화를 위한 설정이라고 굳게 믿어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악마를 보았다>의 그에게 실망했더랬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너무 무시무시해 극장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의 경력에는 도움이 안되는 배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쉬다가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힘겹게 복귀한 그가 보다 풍성한 연기로 영화계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고, 한때 ‘너무 내지르는 연기만 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던 그가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 세계로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그의 ‘진정한 복귀’라 말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다른 기자들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를 인용하면서 “최민식 연기, 살아 있네!”라고 외친 걸 보면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곧 신작 <신세계>에 돌입한다고 하니 그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된 듯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중년배우들의 놀랍고도 반가운 복귀가 이뤄지는 시기인 모양이다. <부러진 화살>에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안성기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저력을 새삼 확인시켜준 한석규가 대표적인 예다. 중년배우들의 활력을 확인한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관록있는 배우들의 깐깐한 연기를 더욱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어디선가 불만의 소리가 들린다. 그건 여배우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수년째 “여배우가 할 만한 영화가 없고 좋은 영화는 더 없다”고 외쳐왔다. 최근 만난 한 여배우도 “일단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별로 없고 그나마 들어오는 것도 뭔가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긴, 젊은 남자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유독 많은 한국영화계는 뭔가 절름발이 같은 느낌이다. 성별과 연령을 안배해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주문이겠지만, 중장년과 여자배우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확실한 차별점이 생길 것이란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변덕스러운 게 관객의 입맛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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