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느와르> vs <빨간 풍선> <국외자들>
기다림 그리고 생기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인 정성일이 스스로 인정했듯 <카페 느와르>를 보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인용의 목록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교양이 심하게 없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카페 느와르>의 정서와 태도는 교양없는 사람에게도 일말의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페 느와르>의 지도를 따라 맴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로 들어가 볼 영화는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이다. 알베르 라모리스의 단편 <빨간 풍선>(1956)을 2008년의 파리 상공에 다시 띄워 인물들이 의외의 방식으로 서로 만나게 하거나 어딘가를 거닐게 만든 영화다. <카페 느와르>의 빨간 풍선도 때로는 남산 케이블카의 세로축을 가로지르며 두둥실 떠가다 때로는 여인의 손끝에 머무르는 식으로 서울을 떠돈다. 두 번째는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이다. 바로 카페에서 뮤직박스의 리듬에 맞춰 춤추던 세 남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밟는 스텝, 그들이 손뼉 치는 소리, 스냅, 엉덩이의 실룩거림, 자유롭게 움직이는 어깨에서 뿜어져나오는 생기로움이 기억날 것이다. <카페 느와르>에서도 정유미가 두 남자와 인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국외자들>의 카페장면과도, <카페 느와르>의 나머지 부분과도 전혀 다른 흥을 전달한다. 그리고도 고다르의 <주말>,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 등 발견할 수 있는 영화는 무수히 많으니 눈을 크게 뜨고 걸을 것.
<비기너스> vs <국외자들>
움트는 기운 <국외자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또 다른 장면은 오딜, 아르튀르, 프란츠가 손에 손을 잡고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장면이다. 어느 미국인이 세운 9분45초의 기록에 도전하겠다며 미친 듯이 뛰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시원해지는 장면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2003년에 만든 <몽상가들>에서 그 장면과 똑같은 장면을 새로 찍은 뒤 둘을 교차해 보여주기도 했다. 68혁명을 배경으로 한 베르톨루치의 영화에도, 영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어 했던 고다르의 영화에도, 그들의 쿵쾅쿵쾅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의외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런 활기는 마이크 밀스 감독의 <비기너스>에도 남아 있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밀스는 <국외자들>의 그 장면에 붙어 있는 정치적인 뉘앙스를 덜어내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동작을 사랑이 움트는 기운 속에 담아냈다. 지금 막 사랑을 시작하고 있는 올리버(이완 맥그리거)와 애나(멜라니 로랑)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힐끔거리든 말든 복고의 상징인 롤러스케이트를 끌고 으리으리한 호텔 로비 복도를 달린다.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도 어딘지 샹송풍인 것이 <국외자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딘가로 떠나던 오딘과 아르튀르,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강아지가 함께 막 <비기너스>에 도착한 것 같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돌아온 그들이 반가운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