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s(lost and found)
감독 제임스 베닝 상영시간 53분 화면포맷 1.37: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영어 자막 없음 출시사 에디션 필름뮤지엄(독일, 2장) 화질 ★★★☆ / 음질 ★★★☆ / 부록 없음
예술영화의 홈비디오에 관심이 있을 경우 ‘에디션 필름뮤지엄’(이하 필름뮤지엄)은 꼭 방문해야 할 코스다. 미국의 크라이테리언이나 영국의 유레카는 필름뮤지엄에 비하면 중급 코스에 불과하다. 독일어권 필름 아카이브와 ‘괴테 연구소’의 합동 프로젝트인 필름뮤지엄은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영화를 DVD로 출시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디지털 미디어의 가능성을 활용하고 아카이빙의 양질화를 지향한다. 지금까지 미국과 소련의 초기 영화, 위대한 작가들의 희귀작, 실험영화 및 퀴어영화를 아우르는 60여편의 DVD를 제작했으며, 30장의 디스크에 알렉산더 클루게의 작품을 총집결한 <알렉산더 클루게 컬렉션>과 바이마르 시대의 영화 유산을 집대성 중인 <어나더 바이마르 컬렉션>으로 명성을 드높인 바 있다. 이들은 얼마 전 새 시리즈를 기획함으로써 여타 레이블과 다시 한번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제임스 베닝 시리즈>다. 베닝은 40년 넘게 활동하며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한 인물이다. 하지만 필름의 DVD화를 거부해온 베닝의 고집 탓에 한국에서 그의 영화를 관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나마 전주영화제에서 간간이 소개되는 작품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베닝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시리즈 형태로 DVD가 나온다는 거다. ‘오스트리아 필름뮤지엄’이 베닝의 16mm 필름을 복원하고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맡아 진행하며, (향후 라인업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아메리칸 드림>을 시리즈의 첫 출시작으로 선보였다.
이미지의 지속과 변주를 통해 머리를 째깍거리게 하고 심장을 두근대게 만들었던 근작들에 견주어 1984년 작품인 <아메리칸 드림>은 사뭇 복잡하다. 당시 베닝은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의 상호작용을 실험하고 있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은 ‘텍스트-이미지-필름’(text-image-films)이라 이름 붙인 시리즈의 첫 작품에 해당한다. 극중 이미지로 제시되는 건 미국 야구의 영웅 행크 아론과 관련된 잡다한 기념품들이다. 한때 야구선수를 꿈꾸었다는 베닝이 직접 수집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념품의 리스트는 ‘껌 종이, 엽서, 포장지, 동전, 우표, 배지, 퍼즐’ 등을 포함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에서 좌로 줄줄이 흘러나오는 텍스트는 다름 아닌, 정치가를 암살하려는 한 남자가 손으로 쓴 일기다. 베닝이 썼을까 싶은 이 일기는 사실 아서 브레머의 것으로서, 그는 닉슨을 암살하려다 결국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지 월리스를 향해 총을 쏜 범죄자다(<택시 드라이버>를 기억할 것). 사운드의 구성물은 다양해서, 연설문, 인터뷰, 라디오방송, 광고의 퍼레이드 사이로 1954년부터 1976년까지의 히트곡을 삽입해놓았다. 겉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1954년에 밀워키 브레이브스에 입단해 1976년까지 메이저리거로 활동한 아론의 영웅성과 1950년에 밀워키에서 태어나 1972년에 한심한 암살극을 벌인 브레머의 비극성을 대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영화의 정체는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하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의 관계를 극히 양식적으로 구사하고 공적 역사와 개인의 기록, 대중문화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들 틈으로 날렵하게 이동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만들어진 역사로 꾸민 사적 역사 혹은 대체 역사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요즘의 유사한 다큐멘터리보다 수십년은 앞선 시도였다. DVD는 베닝의 80년대 주요 작품 중 한편인 <풍경 자살>(92분)과 합본으로 출시됐으며, 충실한 해설서를 별도 제공한다(이 글의 상당 부분은 그 해설서를 옮긴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