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해가는 재래시장 건어물가게 주인 정의섭. 상인회 총무 직함 달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일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외주제작사 PD 이상운. 한때 잘나가는 공중파 PD였지만 직접 프로덕션을 차린 뒤로는 제작 프로그램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막다른 곳에 몰린 이들이 케이블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일명 야바위라고 불리는 구슬 든 컵을 맞히는 게임, 돈 놓고 돈 먹기. 이 사행성 프로그램에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바보’지만 남들은 못 듣는 소리를 기막히게 잘 듣는 소년 김일우가 참여한다. 돈 없는 부모가 아파트 한채 사고 싶어 전세보증금 5천만원을 참가비로 덜컥 내버린 것이다. 이렇게 추락 직전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성공해보고자 제 손으로 기획한 패자부활전이 시작된다.
책 제목이나 광고 카피를 보면 ‘바보’ 소년 김일우의 성장 일기 같은데 막상 뚜껑을 열면 딴판이다. 정말 평범하고 조금은 어리석고, 생활은 어렵고, 그래서 어쩌다보니 사기에 가까운 사고를 치는 인물들의 촌극이 이어진다. <서울의 달> 같은 90년대 서민풍 드라마의 느낌이 물씬하다. 일화들이 뻔하고 약간은 심심하리만치 정직하게 서술되긴 했지만, 현장감있게 그려진 방송가 내부사정이 눈길을 끈다. 협찬과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국, 언제 어떤 반응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인터넷, 이 둘을 신경 써가며 제작비 부족하고 제작기간 빠듯해도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만드는 외주제작사. 죽도록 발을 굴리며 우아하게 물에 떠다니는 오리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 촌극이 어떤 결말을 맞이해야 할까. 그래도 착한 사람들인데 해피엔딩을 안겨줘야 할까, 어리석음과 사기의 대가로 부메랑 한번 제대로 맞아야 할까. 결말은 양쪽을 다 매만지다 갈지자를 그리며 흔들리는 듯하다. 그래도 이 점 하나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시청률이 대박 나도 정작 돈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 우리 모두 열심히 사는데 도대체 돈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라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우리 시대를 위한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