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예민한 여성감독일 거라 생각했다. 타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가는 와중에 일어나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집으로 데려가 줄게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목발을 짚은 청년이 절뚝거리며 걸어와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함께 자리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나 이야기를 나눈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의 언니 핀과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연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진지하고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의 눈빛에는 영화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벌써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처음에는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의 후반작업 때문에 3개월 정도 머물렀고, 두 번째는 부산영화제 참가,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영화 덕분에 세번이나 방문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올 때마다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일단 너무 춥다! (웃음)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는 부산영화제가 산파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타이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소규모 예산의 영화는 결국 제작비 확보가 제일 절실하다. 그렇다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디지베타 방식으로 찍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부산영화제 ACF(아시아영화펀드) 중 인큐베이팅펀드의 지원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다시 ACF의 후반작업 지원펀드에서 도움을 받았다. 두번에 걸쳐 지원받는 일은 드물다고 하더라. 감사할 따름이다.
-부산영화제의 ACF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웃음) 타이 영화판은 워낙 좁아 전부 가족 같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스크립트나 시나리오를 보고 여기저기서 조언과 도움을 준다. 그곳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ACF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응모했고 다행히도 선정되었다. 아딧야 아사랏 감독의 <원더풀 타운>이나 시바로지 콩사쿤 감독의 <영원> 역시 ACF에서 도움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는 죽음을 통한 가족간의 유대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당연한 것에 대해 한번쯤 돌아볼 시간을 주고 싶었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우리가 종종 잊고 지내던 것들, 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뒤돌아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것은 죽음의 순간에 찾아올 보편적인 깨달음을 담고 싶어서였다. 죽음만큼 평등한 것도 없으니까. 실제로 4년 전 단편영화를 찍을 당시 촬영감독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영화는 그때 출발했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데, 타이 특유의 장례문화나 죽음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진하게 묻어난다. =억지로 설정한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것이 메시지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영화를 보고 무엇을 읽어내고 느끼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고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풍습이나 운전기사가 거리낌없이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 모두 지금 현재의 타이를 반영했다.
-모녀 관계나 자매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감정표현이 놀랍다. =주인공이 여성인 편이 표현과 공감의 폭이 훨씬 넓어질 거라 생각했다. 언니는 나, 동생은 촬영감독이 모델이다. 누나나 어머니, 주변 여성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웃음) 나를 비롯한 가족, 공동작가로 참여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다 섞여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알려진 타이영화들은 지역색이 상당히 강하고 이국적이다. =타이영화는 크게 코미디, 호러로 대표되는 상업장르영화와 외국에서 인정받는 아트하우스 그룹의 영화로 나뉜다. 나는 딱 그 중간에 있지 않나 싶다. 표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쉽고 접근이 편한 쪽이면 좋겠고 내적으로는 차분하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고 싶다. 결국 조화와 이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르지만 함께 섞여 있는 것, 그 다양함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나리오를 하나 쓰고 있다. 물론 먹고살아야 하니 일이 생기는 대로 작업도 한다. ACF에서 ‘감독생계지원펀드’ 같은 건 안 만드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