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은 사실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만화, 인테리어, 제품디자인, 가구, 웹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코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직접 만나본 그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와는 거리가 먼 유쾌한 라틴계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화려한 손동작과 다채로운 표정은 기본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사람을 흉내내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주 <치코와 리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하바나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늘어놓거나 돈만 밝히는 뉴요커에 대한 험담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무지 그의 말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웃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치코와 리타>가 대상을 수상했다. =그런가. 전혀 몰랐다. 미안하다. <치코와 리타>는 많은 영화제에 출품됐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멕시코, 아르헨티나, 마이애미, 뉴욕, 하바나, 베를린,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등에서 초청을 받았지만 모두 참석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웃음)
-당신은 전문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치코와 리타>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치코와 리타>를 연출한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의 작품 가운데 <칼레 54>(2000)란 음악다큐멘터리가 있다. 라틴 음악가 베보 발데스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과 라틴 음악을 소개하는 영화다. 이 작품으로 우리는 친구가 됐다. <치코와 리타>는 페르난도가 나의 쿠바 스케치들을 보고서 이곳을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고 했다. 페르난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페르난도가 연출과 각본 등을 맡았고 나는 그림쪽을 담당했다.
-1950년대 하바나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 =1954년의 쿠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당시 뉴욕과 하바나는 매일 비행기가 다닐 정도로 교류가 활발했다. 하바나에는 200여곳의 재즈 클럽이 성황리에 운영됐다. 매 주말 미국인들이 하바나로 넘어와 재즈를 듣고 여자와 데이트하고 춤을 추곤 했다. 화려한 도시였던 하바나는 <치코와 리타>를 위한 완벽한 시대적, 지리적 배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치코와 리타>를 하바나에서 공개했을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하바나를 반가워했다.
-<치코와 리타>에서는 하바나와 대비적인 공간 뉴욕도 있다. =하바나는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강렬한 태양과 파란 하늘이 있다. 반면 뉴욕은 회색빛 하늘과 눈이 오는 추운 날씨 그리고 빌딩의 벽돌 같은 차가운 이미지의 도시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느낄 뉴욕의 차가움을 영화에 담았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어떻게 만들어냈나. =컴퓨터 작업으로 인물들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마다 페르난도는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하바나로 가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촬영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로토스코핑(lotoscoping)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실사 촬영에서 움직임을 만들어낸 이번 작업은 매우 중요한 시도였다. 그림체의 경우 일반적인 드로잉이 아닌 캐리커처 작업을 거쳤는데 더욱 그래픽화된 그림이 나왔다. 매우 흡족하다.
-<치코와 리타>는 그림도 좋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한다. =올해 94살인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에게 조심스레 공동작업을 요청했다. 단 일주일 만에 그는 3개의 트럼펫, 4개 색소폰, 드럼 연주가 담긴 50여곡을 작곡했다. <치코와 리타>를 마지막으로 지금은 아쉽게도 더이상 연주를 못한다. 우리는 정말 행운아였다. 그 밖에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의 연주를 디지털 복원 음악으로 쓸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실제 사운드를 원했다. 그래서 뉴욕의 재즈 뮤지션을 찾아다녔다. 고인이 된 냇 킹 콜의 연주를 위해서는 그의 동생(프레디 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꺼이 냇 킹 콜의 연주를 재현했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 계획이 있나. =지금 두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돈이다. <페르세폴리스>를 제작한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조차 지금은 실사영화(<Chicken With Plum>)를 제작하고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벼랑 위의 포뇨>를 어른들이 보았을까? 사람들은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어린아이들이 보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