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즈음이면 탄생 100주년, 사망 10주기, 20주기, 30주기를 맞은 인물 명단을 뒤지는 게 연례행사처럼 됐다. 처음에는 기획 아이디어나 좀 얻어보려고 시작했는데(실제로 한때 기획기사 여러 개를 낳기도 했다), 어느새 나름의 연말연시 이벤트가 된 셈이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요즘처럼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게 쉬운 시대에는 약간만 노력해도 ‘탄생자’와 ‘사망자’의 리스트가 뚝딱 뽑혀 나온다.
2012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들의 명단은 짱짱하다. 우선 영화인으로는 명배우 진 켈리, 모더니스트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할리우드의 이단아 감독 새뮤얼 풀러, 묵직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 돈 시겔,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척 존스 등이 있다. 문화계 인사로는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 우디 거스리, 물감을 마구 뿌리기만 해도 예술과 돈이 됨을 알려준 화가 잭슨 폴록, 현대 음악의 거장인 존 케이지, 거물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100년 전 태어났다. 한국인으로는 베를린올림픽 챔피언 손기정, 작가 백석, 성철 스님, 지금 전시회가 열리는 사진작가 임응식 그리고 ‘XXX2년 탄생 신화’의 시조 김일성이 1912년 출생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파라마운트와 그 유명한 타이태닉호도 100년 전 각각 탄생과 침몰을 맞았다. 사망 10주기를 맞는 인물로는 제임스 코번, 로드 스타이거 같은 배우와 빌리 와일더, 존 프랑켄하이머 같은 감독, 전설의 프로듀서 루 와서먼 등이 있다. 시간과 지면 관계상 20주기와 30주기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렇게 회고만 하기에 2012년은 너무 벅찬 일정을 품고 있다. 5월의 여수세계엑스포와 7월의 런던올림픽처럼 화려한 이벤트가 있는 한편, 4월11일의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의 대통령 선거처럼 중차대한 정치 이벤트도 끼어 있다. 3월의 러시아 대선과 11월의 미국 상?하원 투표까지 생각하면 전세계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출렁일 듯 보인다. 게다가 12월21일로 예고된 마야력의 종말, 즉 인류종말론까지 끼워넣으면 올해는 설렘과 불안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해가 될 것 같다(12월19일 당선되는 분의 기쁨도 이틀 동안은 불안에 잠식당할 듯).
한국영화계 또한 기대와 불안의 쌍곡선 속에서 한해를 보낼 전망이다. 우선 정권 말기, 두번의 선거 속에서 영화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 충무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대기업의 독과점에 관한 논의도 격렬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큰 궁금증도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산업의 침체가 바닥을 친 듯했지만 <마이웨이>와 <퍼펙트 게임>의 부진을 계기로 상승세가 꺾일지, 아니면 2012년 개봉작을 통해 다시 치고 올라갈지 말이다. 올해 한국영화의 흐름을 짚어보는 이번주 특집기사가 이러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