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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미친 존재감
안현진(LA 통신원) 2012-01-06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닐 패트릭 해리스

어떤 역할은 배우를 떠나지 못한다. 사라 제시카 파커에게서 사람들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를 찾아내고야 마는 것처럼. <천재소년 두기>에서 16살 천재 의사 두기 하우저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도 마찬가지다. 1988년 <클라라의 비밀>로 데뷔한 뒤 TV, 스크린, 무대를 고르게 오가며 꾸준하게 경력을 쌓았지만 사람들은 해리스가 아닌 두기의 경력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해리스가 쌓아올린 경력은 예상보다 다채롭다. 두기였을 때의 외모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자라난 그는 뮤지컬 <렌트>의 마크가 되어 8mm 카메라를 들고 무대 위를 뛰었고,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에서 대마초에 찌든 ‘닐 패트릭 해리스’를 연기해 시리즈의 감초로 자리잡았다. 토니상 시상식의 호스트로 활약했으며, <글리>에 카메오 출연해 춤과 노래 실력을 뽐냈다. 현재는 시즌7이 방영 중인 <CBS> 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바람둥이 바니 스틴슨이 되어 이른바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주인공 테드가 2030년에 자신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내가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났느냐면…” 하고 말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었으니, 시즌7에 이르도록 아이들 엄마는 발목만 한번 등장했을 뿐이다. 사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테드가 ‘그녀’를 만나는 여정이라기보다 테드를 비롯한 마셜, 릴리, 로빈, 바니 등 다섯 친구들이 함께한 청춘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특히 이 시트콤은 회상의 구조를 따름으로써 화자가 원하는 시점으로 점프가 가능하다는 특징을 십분 활용한다. 이를테면 바니의 결혼식 장면을 슬쩍 제시해 시청자의 궁금증을 부풀려놓고는 화제를 전환해도, 현재 시점에서는 모두 과거이기 때문에 흐름에는 문제가 없다. 해리스가 연기하는 바니는 테드의 절친한 친구로, 치마만 두르면 껄떡대는 심각한 바람둥이다. 시즌5까지만 해도, 테드의 부인은 대체 언제 등장하냐며 원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바니의 부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여론이 대세다. 그만큼 바니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도 될 터다.

바니는 일견 여러 여자를 만나는 얄팍한 남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목표한 상대에게서는 매력적인 부분만을 찾아내며,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낙천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테드나 마셜 캐릭터가 연기자를 실제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것과 달리 바니 캐릭터는 해리스가 캐스팅된 뒤에야 설정을 완성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해리스의 인터뷰에서 바니의 장점들이 고스란히 발견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동성 연인과의 약혼, 대리모를 통한 쌍둥이 출산 등 그의 사적인 삶에 대한 질문들이 쇄도하지만 해리스는 모든 질문에 밝고 성실한 대답을 내놓는다. 숨기거나 꺼리기는커녕 홍보대사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러워한다. 사적인 그는 접어두고, 연기자로서 해리스가 특히 인상적인 점은 스스로를 배우라기보다는 기술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의 연기에는 유난히 얻어맞거나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많은데, 해리스는 그 장면들을 포함해 연기라는 모든 것은 철저한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종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제작과 연출에 관심이 많고,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도 세간의 과도한 관심을 곤혹스러워하지 않는 것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듯 보인다. 이러고 보니 닐 패트릭 해리스를 두기로만 기억하는 것은 부당하다. 자신의 내면을 골똘히 바라보다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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