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꼽사리다>(이하 <나꼽살>)의 1회는 알려진 바대로 여러 번 녹음되었고 그 과정에서 패널이 교체되었다. 1회 방송을 들어보면 왜 재녹음이라는 초강수가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있음은 알겠는데, 풍자가 튀어나올 곳에서 개그가, 팩트(혹은 개념) 정리를 해야 할 곳에서 얼버무리기 신공이 등장하고, 정치 얘기로 너무 빠지기도 해서 재미없는 <나는 꼼수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경제라는 소재는 날달걀 같은 데가 있어서 약간만 거칠게 다루어도 깨져버리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상해버리고, 조리법에 따라 다이어트식이 되기도 영양식이 되기도 하고, 다른 재료와 자유롭게 섞어 수십만 가지 요리로 재탄생할 수 있다. 정치를 소재로 한 <나꼼수>는 ‘그들’의 비겁함 혹은 사악함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지만 경제를 소재로 한 <나꼽살>은 ‘우리’의 이기심 혹은 사악함을 논하는 불편함을 피하려고 했다간 모호하고 재미없어진다. 통큰 치킨이 등장했을 때 동네 치킨 배달점 원가논쟁이 붙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경제논리가 등장하면 연대는 실현 불가능한 가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경제논리대로의 선순환을 시작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사고가 필요한 시기다.
여튼, 우왕좌왕하는 <나꼽살>을 듣다보면 마냥 어려워만 보이는 경제 풍자가 <오! 당신들의 나라>를 읽으면 쉽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를 위해 99%가 희생하도록 재편되는 미국사회의 경제적인 문제를 피부에 와닿는 이슈들을 통해 풍자한다. 미국 얘기라는데 한국과 똑같다. 더이상 고학력이 신분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대학 신입생은 빚을 지는 것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다. 끔찍하게도, 실업과 가난은 ‘수치심’을 통해 내면화된다. 수치심은 강제보다 더 효과적인 사회 통제 수단인데, “‘게으르고 난잡한 기생충’이란 정형화된 낙인 때문에 복지혜택 수령자들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지 못한다”. 무엇보다 최상위층을 제외하면 중상위층 이하 모두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최저임금, 불법체류자, 중산층의 추락, 쇼핑, 정신의료(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의 조승희 사례가 등장한다), 아동착취, 섹스와 낙태와 금욕, 결혼, 종교를 비롯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이슈들을 경제적으로 풀어낸다. 개그가 아닌 풍자가 이 우울한 현실을 읽을 만하게 만드는 조력자가 되고, 우리 자신이 마냥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함을 인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말을 무작정 따른다고 그들처럼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나만 빼고 다 망해버려라!”는, 99%에게는 불가능한 바람이다.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마지막 지푸라기다. 너와 내가 같은 편이라는 패가르기가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