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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꽃보다 배우

<원더풀 라디오>의 이민정

‘평민이 된 여신’이라니. <원더풀 라디오>의 권칠인 감독이 이민정에게 요구한 지시다. 그러니까 <시라노; 연애조작단> 때 보여준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을 좀 줄이고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는 게 감독의 뜻이다. 그래서 감독의 지시가 제대로 전달됐냐고? 글쎄.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DJ까지 하는 등 ‘이민정 종합선물세트’인 <원더풀 라디오>를 보니 그의 매력이 더욱 배가된 느낌이다. 어쨌거나 처음으로 혼자서 극을 이끌어간 <원더풀 라디오>의 이민정의 사연을 다음 장부터 전한다.

“스스로 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민정은 얼마 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런닝맨>에 출연해 그렇게 말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누구는 그를 ‘여신’으로 칭송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소주를 마시다가 광고 포스터에 있는 그를 바라보며 절로 미소를 보이곤 하는데, 자신이 미인이 아니라니. 이 문제(?)의 발언이 전파를 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은 예상 가능하다. 어떤 여성들은 “당신이 미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미인인가”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몇몇 매체는 그의 말을 머리기사로 올려 비아냥거리기에 바빴다. 그 반응을 지켜본 이민정 역시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되게 민망했어요. 유머로 얘기한 건데…. 예쁘다, 안 예쁘다, 세련됐다, 안 세련됐다 같은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가 없을수록 관객이 캐릭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제게 ‘도회적인 이미지’라고 하면 제 캐릭터가 그렇게 한정될까봐 걱정스럽거든요.” 어쩌면 이민정이 자신의 외모를 부정하는 것은 겸손의 가장(假裝)이 아닌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그만의 방어인지도 모른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

인기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지금은 맡은 프로그램이 달랑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 DJ. <원더풀 라디오>에서 이민정이 맡은 신진아를 이렇게 한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어린 나이에 정상을 밟은 전적답게 때로는 제 성질을 못 버릴 때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수로서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신진아다.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로 데뷔한 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1)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당시 이민정의 나이가 29살임을 감안하면 신진아는 확실히 이민정과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서 그런지 10대 때부터 엄격하게 훈련받아 일을 시작한 아이돌 그룹이 존경스러워요.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후 여러 제안이 들어왔지만 진아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겠더라고요. 아이돌 그룹 시절 장면을 찍어야 하니까. (웃음)” 맞다. 특정 나이가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캐릭터가 있다. 그게 이민정에게는 신진아였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 출신이자, 라디오 DJ이자,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신진아는 연기 하나만 신경 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춤도 출 줄 알아야 하고, 실제 DJ처럼 라디오도 진행할 줄 알아야 하고, 노래도 잘 불러야 하고, 기타도 연주할 줄 알아야 했다. 만능엔터테이너를 요구하는 캐릭터지만 그건 이민정에게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음악을 좋아한다. 연기가 아니면 언제 가수를 해보겠나. 어릴 때부터 라디오 애청자라 DJ에 대한 로망도 있다. DJ가 등장하는 영화는 많았지만 DJ와 가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던 것 같다. 기타줄을 잡아본 게 이번이 처음인데, 연습하다가 기타 소리가 났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을 못한다. 정엽 오빠가 진행하는 <푸른밤, 정엽입니다>에 일일 DJ를 연습삼아 맡기도 하고. 보컬 트레이너과 함께 노래 연습도 했다. 지금까지 연기를 위해 했던 어떤 트레이닝보다도 행복했다.” 때로는 일을 할 때 팬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완벽한 캐릭터 변신!

진짜 문제는 본업인 연기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건 네명의 남녀배우가 함께 이끌어가는 영화였다. 그러나 <원더풀 라디오>는 상대역을 연기한 이정진이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신진아 혼자 이끌어가는, 그러니까 이민정 원톱 영화와 다름없다. “이 영화처럼 이민정의 실제 모습이 온전히 담긴 작품도 없을 것”이라는 권칠인 감독의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자를 통해 권칠인 감독의 말을 들은 이민정은 “저희 영화는 다 애드리브였어요. 시나리오가 없어요”라고 웃었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잇는다. “권칠인 감독님은 배우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에 많이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촬영 들어가기 전, 감독님께서 ‘연기할 때 감정이 어색하면 시나리오상의 지문이나 대사를 바꿔줄 테니 이야기하라고’ 하실 정도세요.” 사건과 행동 그리고 감정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제 역할만 충실하면 되는 다른 영화와 분명 다른 성격의 작업이었다. “가끔은 잘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더라고요. 그건 이정표가 있어야 확인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그 이정표마저도 네가 누구보다도 잘 알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중간점검할 때 ‘네 안에 답이 있어’라고 하시는데, 혼자서 ‘오우, 오우’ 하며 어려워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웃음)”

고생한 만큼 분명 공부가 됐다. 영화의 후반부, 어떤 일(?)을 계기로 진아가 방송국을 떠나는 장면을 찍을 때다. “원래 시나리오는 ‘어떻게 해명도 안 하고 그냥 가냐’는 이정진씨의 대사에 ‘제가 어떻게 얘기하면 믿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슛이 들어가자 아무 생각없이 입에서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때 나온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도 오케이하시고.”

이야기의 큰 설정 안에서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하는 상황을 통해서 이민정은 주연배우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갔다. “물론 부담스럽죠.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내가 부족한 부분은 음악이 채워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원더풀 라디오> 등 최근 두편의 로맨틱코미디에 출연한 그는 앞으로 어떤 역할이든지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관객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명작을 제 필모그래피에 추가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좋은 영화를 잘 골라야 하고, 연기적으로 성숙해야겠죠. 물론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전도연 선배님 역시 조금씩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신 거잖아요.” 대중이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또래 여배우와 달리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끌어준 외모와 이미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려는 그의 노력을 보면 이민정은 잘 아는 듯하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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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안미경 실장, 미스지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