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가야르도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그래픽 노블 작가다. 14살짜리 딸 마리아는 엄마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2500km 떨어진 카나리 제도에 산다. 뷔페, 스파게티, 많은 사람이 모이는 파티,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 기억하기를 좋아하고, 아빠를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게 “아빠와 나”(tu y yo)라고 말하는 마리아. 그녀는 자폐아다. 그리고 <마리아와 나>(Maria y yo)는 부녀의 여름휴가를 그린 미겔 가야르도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가야르도는 스케치북에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어린 시절의 일상생활을 그림으로 담아왔다. 특징만 잡아 펜으로 슥슥 그려내는 심플한 드로잉이 그의 스타일로 자리잡았고, 현재 스페인 매체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뉴요커> 같은 매체와 동물보호, 장애인 관련 단체의 발간물에도 일러스트를 싣는다. 매년 카나리 제도의 휴양 리조트에서 보내는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된 그래픽 노블 <마리아와 나>는 2007년에 출간됐고, 2011년 5월에 열린 바르셀로나 코믹 박람회에서 최고 코믹북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는 영상과 가야르도의 애니메이션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마리아의 눈에 보이는 세계를 표현해냈다. 3시간 반 동안 타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 따분해진 마리아가 옆의 빈 좌석을 두드려 폴폴 올라오는 먼지에 반사되는 빛을 보면서 황홀해하고, 모래사장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모래알을 흩뿌리는 딸의 모습에서, 그 모습이 화학분자구조를 살피는 건지 우주를 보는 건지 아님 그저 모래알을 세는 건지 궁금해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덕에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큐멘터리에는 마리아의 특수학교에서의 생활, 마리아를 양육하는 엄마의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만 들어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에는 마리아에게 ‘동등한 기회’가 아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고, 그녀의 작은 세상 속에서는 가는 곳마다 붉은 카펫이 깔리는 여왕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가야르도의 욕심도 담겨 있다. 하지만 전달되는 감정은 유머러스하고 아이러니하며 담백하다. <마리아와 나>의 책 표지를 장식하는 마리아의 티셔츠에 쓰인 “I’m unique just like everyone else”(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조금 독특할 뿐)이라는 글귀가 마리아 가족을 가장 잘 대변하는 모토인지도 모른다.
<마리아와 나>는 2010년 7월에 개봉한 뒤 2011년 12월 현재까지 스페인·프랑스·영국·그리스·호주·포르투갈·미국·멕시코·한국(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등에서 열린 영화제에 초청받아 10여개의 상을 받았고, 정부, 시민단체, 장애인 인권단체 등에서도 계속해서 시사회를 열며 공감대를 넓혀나가고 있다.
장애보다 가족이란 테마가 중요했다
펠릭스 페르난데스 데 카스트로 감독 인터뷰
-<마리아와 나>는 어떤 영화인가. =이것은 자폐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가족에 관한 이야기며 미겔 가야르도의 책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리아와 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나누고 대화의 방법을 찾아가는 아버지와 딸에 관한 영화다. 사랑, 대화, 공감이 장애나 자폐보다 훨씬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한다.
-촬영 자체에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마리아와 촬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캐릭터로서 가진 임팩트가 강할 뿐 아니라, 촬영팀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녀만의 삶의 방식을 공유하면서 무척 만족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다. 어떤 장면은 마리아의 코앞까지 카메라를 들이밀어 촬영했지만 그녀는 카메라의 존재를 완벽히 무시한 채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자연스러운 장면들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미겔 가야르도의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는 다큐멘터리에 어떤 역할을 했나. =마리아에게 어떤 장면을 연출해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만의 세계에서 보이는 일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적합했다. 또한 가야르도는 마리아가 태어난 시점부터 수백권의 스케치북에 삽화를 그려왔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무한의 자원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