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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당신의 베스트는 무엇입니까?
문석 2011-12-26

1년 단위로 무언가를 결산하는 문화를 누가 언제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꽤 유용한 게 사실이다. 단지 기사 아이템 하나를 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런 연말 결산은 나름의 뜻이 있다. 초단위로 휙휙 바뀌는 이 초고속 시대에 뒤를 돌아본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냐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몇주 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부랴부랴 챙겨보느라 바빴다. 이런 연말 결산 투표라도 하지 않으면 굳이 돌아보지 못할 영화들. 그러다 보니 더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개봉 당시 게으름 피우다 놓친 김태용의 <만추>(감독님, 죄송합니다요)라든가 미적거리다 기억에서 잊혀진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 등 숱한 영화들이 아직도 휴대폰 메모장의 ‘봐야 할 영화들’ 목록에 남아 있다. 다행히도 아직 기회는 있다. 씨네코드 선재에서 하는 ‘마지막 프로포즈’ 같은 연말 결산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영화평론가 등이 꼽은 한국영화 베스트10 상영회를 가질 예정이다. 꼭 보고자 했던 영화를 놓쳐 아쉬웠던 분이라면 이런 기회를 노리기 바란다. 아울러 <씨네21>이 꼽은 올해의 감독 2연패를 달성한 홍상수 감독님께 진심어린 축하의 뜻을 전한다.

기왕 결산을 시작한 김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결산을 해봤다. 개인적으로 꼽은 올해의 음반은 코스모스 사운드의 ≪스무살≫이다. 여린 감성과 간절함이 묻어 있는 풋풋한 멜로디에 한표를 던진다. 올해의 TV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다. 꾸준하게 재미를 유지하고 계속 새로워지는데다 시사적인 이슈 또한 거의 완벽하게 녹여낸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올해의 미드는 <홈랜드>다.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세뇌당한 병사와 그를 추적하는 정보요원의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보는 내내 섬찌 짜릿하게 만든다. 올해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팟캐스트이긴 하지만) 단연 ‘나는 꼼수다’, 올해의 코미디언은 강용석 의원, 그리고 올해의 책은… 음… 잘 모르겠다.

여러분 중에도 이렇게 자신만의 베스트를 꼽는 경우가 있을 거다. 뭐 대단한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금전적 이익이 돌아오는 건 전혀 없지만 그저 재미로, 또는 한해를 정리하는 차원에서는 해볼 만한 일이다. 어차피 이런 걸 꼽아본다고 쇠고랑 안 차고 경찰 출동 안 하잖나. 어쩌면 자신이 저지른 올해의 실수, 실언, 실패를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말에 이런 씁쓸한 것들을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버리면 새해부터는 깨끗한 기분을 안고 살 수 있을 테니까.

가뜩이나 기쁠 일이 없는데다 김정일 사망, 정봉주 수감 등으로 더 뒤숭숭한 분위기지만 모두 행복한 연말을 맞으시기 바란다. 맥주 한잔에 ‘쥐’포를 씹으면서 이런저런 베스트를 꼽다보면 그래도 올해가 최악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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