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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톡] 사랑 사랑 사랑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오계옥 2011-12-20

<씨네21>과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시네마톡: <창피해>

“당신에게 이런 감수성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 <창피해>를 연출한 김수현 감독과 “잊을 만하면 술 한잔 하는 사이”라는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살갑게 말문을 열었다. 오락가락 흩날리는 첫눈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던 지난 12월9일, CGV대학로에서 열린 열두 번째 시네마톡도 7년 만인 김수현 감독의 두 번째 영화를 궁금해했던 이들의 설렘으로 들뜬 분위기였다. 진행은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씨네21>의 장영엽 기자가 맡았고, 김수현 감독과 배우 김꽃비가 함께 자리해 반가운 신작에 대한 화담을 나누었다.

2004년 <귀여워>로 데뷔했던 김수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창피해>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에서 느껴지듯 참신하고도 섬세한 영화였다. 뉘앙스를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뭉뚱그려 말하자면 <창피해>는 세명의 ‘지우’가 얽어내는 여자들끼리의 사랑담이다. 첫 번째 지우는 미대 교수 정지우다. 그녀는 제자 희진의 그림에서 흥미를 끄는 피사체를 발견한다. 그것이 두 번째 지우, 윤지우다. 그녀는 누드모델이 되어달라는 정지우의 청을 받아들여 함께 바다로 향한다. 원초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바다를 앞에 두고 윤지우는 지나간 사랑, 강지우를 떠올린다. 그녀가 세 번째 지우다. 사랑에 헤프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하는 ‘나쁜 여자’ 강지우를 만나 윤지우는 찰나의 행복과 오랜 아픔을 경험했던 과거를 늘어놓는다. 그런 윤지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지우와 희진도 그녀들에게 끌리고 만다. 영화는 그런 그녀들의 수줍고도 당당한 마음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사랑에 빠진 조선족 여인의 입을 빌려 “창피해”라고 속삭이듯 전달한다.

동성애, 이성애 구분 따윈 불필요해

“신선했다.” 장영엽 기자의 첫마디도 김영진 평론가와 비슷했다. 올해 LGBT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는 편집이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색다르고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김영진 평론가 역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진작 이렇게 만들 것이지. (웃음) 20분 줄이고 나니 영화가 아주 슬림해졌다. 헬스로 석달간 트레이닝을 하고 나타난 여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웃음)” 이어 그는 “남자가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영화인데, 디테일은 차치하고라도 발상 자체가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해했다. 김수현 감독이 “건강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 첫 번째 단초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어려웠다. 레즈비언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자인 척 채팅도 해보고 번개도 잡아봤는데(웃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감히 주제넘게 하려고 한 게 아닌가 걱정과 불안과 후회가 들었고, 지금도 든다. 그래도 한국 문화에서 특히 터부시되는 동성의 사랑을 그리면 나 자신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감히 자신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세 ‘지우들’의 사랑을 배우 김꽃비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진행자들도, 관객도, <똥파리>로 잘 알려진 배우 김꽃비가 어떻게 그녀들을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표했다. 김꽃비는 “모든 인물에게 다 공감이 갔다”고 답했다. 그리고 “같은 마음을 먹거나 같은 행동을 하진 않았어도 그녀들과 비슷한 심리가 내 안에도 있는 것 같다. 그걸 끄집어내 이해했다”며 배우로서의 생리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윤지우를 거부하는 강지우의 마음은 배우가 보기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는 김영진 평론가의 질문에는 “근본적인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녀가 몸으로 겪어낸 강지우는 “상처가 있지만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나 괜찮은데?’, ‘나 안 아픈데?’라고 말하는 인물”, “상처받기 전에 먼저 도망가는 약간은 못된 심보를 지닌 인물”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녀에게는 윤지우와의 사랑 또한 범속했으리라 짐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윤지우와 강지우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에 그 사랑이 특별해 보이지만 고시원 남자를 사랑했을 때도 그만큼 애절하고 아름다웠을 수 있다.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까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다”라는 그녀의 말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랑은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분이 불필요한, 언제나 사랑 그 자체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솜사탕처럼 날려버리는 마지막 장면 인상적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장영엽 기자는 마지막 장면에 각별히 주목했다. “말씀대로 강지우는 속은 어떻든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는 인물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효진씨랑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울 때는 감정을 폭발시킨다. 배우로서 쉽지 않은 장면이었을 것 같다.” 이에 김수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네다섯번 고쳤는데 마지막에 추가된 장면”이라고,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라고 털어놓았다. “잘 찍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 꽃비씨가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테이크도 많이 못 갔고. 그래도 첫 번째 편집기사가 그 신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리기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됐겠구나 싶었는데,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는 강지우가 뛰어갈 때 발소리가 크게 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다 웃더라. 몰입해서 봐줬으면 했는데….” 그를 귀엽게 바라보는 관객을 향해 김꽃비는 왜 웃음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강지우가 자기 혼자 막 소리 지르면서 프레임 밖으로 달려나가버리니까….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몸짓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소리 지르는 게 대본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답답한 심정에 막 뛰쳐나가니까 저절로 소리가 나오더라. 그 순간의 감정이 진심이었기에 감독님도 그대로 쓰신 것 같은데…. 맞나?” 그녀도 관객도 김수현 감독의 확인을 기다렸지만 그는 흐뭇하게 웃기만 했다.

김영진 평론가는 편집에 대해 물었다. “편집이 좀 특이하다. 예를 들면 임신했다고 문자 보내는 장면에서 시간상으로 미래에 나와야 할 장소에 이미 가 있다든지, 강지우의 회상장면에 윤지우가 직접 들어가서 보고 있다든지. 액자구조도 단순하지 않다. 액자 속의 액자구조로까지 들어갔다. 왜 이런 장치들을 사용했는지 듣고 싶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그의 질문에 관객도 귀를 쫑긋 세웠다. “의도적으로 시간의 축이 어그러져 있는 부분”에 대해 직접 손을 들고 질문한 관객도 있었다. 한데 김수현 감독의 대답은 낭만적이기 그지없다. “사랑은 기억으로 완성되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은 특히 주관적인 것 같다. 그러니 연대기순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랑 이야기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한 관객은 손을 사용한 미묘한 감정 표현이 좋았다고도 했다. 김수현 감독도 “손이 중요했다. 여성끼리의 사랑에서는 손이 굉장히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서 테이크도 많이 갔고 편집에도 공을 들였다”며 그의 관찰에 동의했다. “그런데 손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 클로즈업밖에 없어서 감정 전달이 과한 부분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며 부족한 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극장은 어느새 사랑에 관한 담소를 나누는 자그마한 티파티처럼 따뜻해져 있었다. 김영진 평론가 역시 어딘지 감상에 젖어 있는 듯한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사랑 타령에 시니컬한 편이다. 근데 이 영화를 보고 반성했다. 여러 겹의 레이어를 통해서 사랑을 고찰한다는 면에서 <창피해>는 참 어른스럽고 예민한 영화라고 느꼈다.” “특히 무거웠던 상처를 솜사탕처럼 날려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는 김영진 평론가의 바람대로 <창피해>가 쌀쌀한 바람에도 먼 관객의 마음에까지 훨훨 날아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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