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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록]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고 좋아서 하는 마음으로”

<결정적 한방>의 배우 오광록

배우 오광록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2009년 대마초 흡연 혐의(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그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로 기소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올해 초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스마트폰영화 <파란만장>으로 활동을 재개한 그다. 이후, 그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영상시 <연보라빛새>를 직접 연출했고, <카운트다운> <오직 그대만>에 출연하는 등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다. 또 곧 개봉하는 <결정적 한방>에서 뇌물을 좋아하는 여당 최고위원을 연기한다. 꺼낼 이야기보따리가 많아 보였지만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요즘도 텃밭을 가꾸는가. =김장 농사가 다 끝났다. 겨울에는 비닐하우스를 쳐야지.

-올해 농사는 어땠나. =예년에 비해 늦게 심었고. 봄에는 열심히 가꿨는데, 영상시 <연보라빛새> 연출 작업 때문에 여행을 다녀오느라 이래저래 바빠서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올해 같은 해가 있었나. =11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처럼 잡초가 무성한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그건 내 삶의 시간과 비슷하겠다.

-잡초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 =좋게 생각하면 들풀이 많이 자라는 건 자연발생적인 일이지. 뭐, 잡초를 재배하기 위해 짓는 농사는 아니니까.

-<결정적 한방>에서 뇌물을 좋아하는 여당 최고위원 ‘근석’을 맡았다. =여당 최고의 실세면서 주인공 ‘한국’(유동근) 장관과 대칭되는 인물이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권력을 가지면서 추해지고, 권력 자체가 자신의 생이 된 남자다. 어떤 면에서 전형적인 악역이라 배우로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런데 왜 출연했나. =시나리오가 좋았다. 이 영화는 정치 이야기를 기본으로, 음악을 하는 래퍼 아들(김정훈)과 아버지 한국의 갈등 등 가족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젊은 세대와 중년 세대 모두 아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을 던진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렇다면 ‘기꺼이 악역을 수행해주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설정만 보면 근석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섞은 인물 같더라. =내가 왜소하고 말라서 그런 것 같다. 눈도 안 크고. (웃음)

-근석에게 연민이 많이 갔겠다. =영혼이 맑은 사람이 아니면 대체로 연민이 간다. 영혼이 맑은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떨리면서 그를 동경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만큼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그들에게 외로움과 연민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형적인 악역이라 캐릭터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어려운 건 없었나. =사실 캐릭터 연기는 특유의 호흡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하잖나. 출연하는 신이 많으면 그 호흡을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데, 출연한 신이 12, 13신 정도밖에 되지 않아 텀이 많이 생기더라. 그래서 오랜만에 현장에 와서 캐릭터를 연기를 하려니까 쑥스럽더라. 완전히 독불장군인데다가 제멋대로인 연기를 하려니까. 리허설을 몇번 하면서 호흡을 달궈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동근이 연기한 주인공 ‘한국’ 역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물론 감독이나 제작사에 농담삼아 그 이야기를 했다. 유동근 선배가 권력을 쥔 근석, 내가 순수한 한국을 맡아야 하는 게 아니냐. 캐스팅이 잘못된 게 아니냐…. 최근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것은 2009년 대마초 사건의 영향 때문인가. =그 얘기는 다음에 하는 게 어떤가.

-사건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상처가 아니라… 화가 많이 났지. 영화 동지들이 나를 캐스팅하더라도 투자자가 ‘배우 오광록은…’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해주지 않겠다니까. 이 영화를 건너뛴 다음에 다시 인터뷰를 하자. 새해가 좋을 것 같다. 그때 하자고.

-이후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스마트폰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했다. 오랜 동지를 만나 즐거웠을 것 같다. =기분이 좋지. 한 감독과 유일하게 여러 작업을 한 사람이 박찬욱 감독이다(<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거의 5년 만에 함께 작업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동지다. 한살 차이고. 그의 현장이 좋다.

-<파란만장>을 찍고 난 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 <연보라빛새>를 직접 연출했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서명수 집행위원장의 제안으로 만들게 됐다. 그는 1994년 <허제비놀이>(연출 이윤택)라는 연극을 할 때 함께 작업한 동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랜만에 만난 뒤 올해 봄에 다시 만났다. 그는 내게 영상시를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내가 시를 쓰니까. 머리도 식힐 겸, 여행도 할 겸, 영감도 얻을 겸해서 그분과 함께 파리, 칸, 지중해를 돌아다녔다.

-여행은 어땠나. =문화의 본향에 가는 기분은 너무 좋았다. 파리는 참 많이 걸어다녔다.

-<연보라빛새>는 그때 만든 시로 연출한 작품인가. =예전에 썼던 시다. 9·11 테러를 지켜보면서 평화에 관한 지독한 우울함에 빠진 적이 있다. 특히, 9·11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화의 본연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평화가 깨진 거잖아. 예를 들면, 예를 들기를 참 좋아하는데, 패랭이꽃이 엉겅퀴, 민들레, 제비꽃에게 잎사귀는 이렇게 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다. 햇살이 비치면 물결마다 각자의 하늘이 담겨 있듯이 문화는 저마다 소중한 것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결정적 한방> 홍보하랴, 12월5일 방영 시작된 종합편성채널 MBN 시트콤 <뱀파이어 아이돌>에도 출연하랴, 최근 다시 바빠진 것 같다. =2년 반 전에 있었던 ‘그 사건’ 이후 나는 영화 제작사로부터 어딘가 멀어졌다. 물론 나를 보는 투자자의 시각이 많이 작용했을 거다. 아무래도 내가 출연하면 영화 홍보에 어려움이 있을 테니까.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졌던 나로서는 영화 동지들에 대한 다소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간 좋은 관계를 가졌던 송일곤 감독이나 영화사 봄 덕분에 비중이 크진 않아도, 이전과 다른 이미지의 역할(<오직 그대만> <카운트다운>)을 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뱀파이어 아이돌>에서는 아이돌그룹 기획사 대표를 연기한다. =경제가 어려워서 출연을 결정했다. 시트콤은 워낙 진행이 쏜살같아서 정말 섬세하게 준비해놓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오광록, 쟤 왜 저래?’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트콤 연기가 쟤, 이제 조졌다. 쟤, 드디어 조진 세계로 갔구나, 그러기 십상이더라. 현장 애드리브가 허락이 된 곳이라 매 테이크 순발력을 보여야 하기도 하고. 속에 목말랐던 것을 다시 살려서, 그 호흡으로 촬영하는 영화와 확실히 다르더라.

-종편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지금은 회사(싸이더스HQ)에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회사에 돈 벌어다줘야지.

-배우 오광록에게 시트콤은 잘 맞지 않는 옷 같다. =자칫하면 시트콤 특유의 동적인 분위기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참 좋은 공부 한다. 어느 날 밤,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애창곡을 흥얼거리다가 생각했다. 시트콤에 임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그러다가 소품 같은 시를 그 자리에서 지었다. <작은 방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시의 내용이 궁금하다. =작은 방에 가듯이 노래를 하네/그의 노래는 시/서글픔 앞에서 수줍은 시/아직도 읽지 않은 노래/그를 따라가네./ 풋풋이 나의 방에 가듯이/나는 나의 노래를 읊조리려 하네.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큰방(영화)에 있다가 작은방(시트콤)에 몰려갈 때 들려오는 소리들, 그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는 풍경들, 그런 모습으로 시트콤에 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은 쉽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앞으로 6개월 120부작의 시트콤 스케줄에 생활을 맞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무엇을 애써서 하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고 좋아서 하는 마음으로. 그게 내 꿈이다.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내년 농사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 봄에는 거름을 충분하게 줘서 밭을 여러 번 갈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삽질을 해서 흙을 자주 뒤집는 게 좋다. 그래야 햇볕이 잘 드니까. 텃밭 면적이 어느 정도냐고? 평수로 치면 네평 정도. 집에서 반찬 해먹기에는 크다. 처음에는 똑딱똑딱 따먹다가 무성해지면 동지들과 함께 나눠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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