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거장이라도 아기예요.” 2011 최강애니전을 기획한 김성주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과연 라오 하이드메츠 감독은 사진 촬영을 하며 연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다. 데뷔작인 <도브 안트>가 1983년 소련 청소년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파파 카를로의 극장>이 1989년 칸국제 영화제애니메이션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고 <거실>은 19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대표작 <본능>의 수상리스트가 가장 화려하다. 2005년 아니마에프카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마스터상을 비롯해 11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수상작 리스트로 가득한 필모그래피를 가졌지만 라오 하이드메츠 감독은 김성주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아이처럼 소박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어떻게 하면 마주 앉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 기자가 지루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2011 최강애니전 최강감독열전에 초청된 라오 하이드메츠 감독은 모든 사람과 유쾌하게 놀 줄 아는 ‘아기’ 할아버지다.
-한국은 처음인가. =처음이다. 더 오래 있고 싶다. 오늘 점심에는 막걸리를 한잔했다.
-에스토니아 출신이니 보드카를 좋아할 것 같은데 막걸리는 어땠나. =보드카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나. (웃음)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잔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맛보는 막걸리는 매우 흥미롭고 맛있는 술이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당신의 수상작 리스트를 보고 놀랐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흠, 어렵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직도 인형을 가지고 노는 노인이다. (웃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걸 두뇌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전세계 사람이 경쟁자다. 여러 영화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이번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출품하지 못한 건 슬프다.
-군대를 가기 싫어서 무작정 전자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애니메이션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사실 그전부터 하고 싶은 것이 애니메이션이었나. =그렇다. 12살 생일 때 키노카메라를 선물로 받았다. 태엽을 감아서 사용하는 것인데 그때부터 사물을 애니메이션화하며 놀았다.
-영화제 소개 영상을 보니 스스로 에스토니아에 대해 거짓 소개를 하고 미디어를 믿지 말라고 한다. =이번 최강감독열전에서 선보이는 <인헤런트 어블리제이션>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메시지가 그 영상에 담겨 있다. 삼성, 현대가 에스토니아에 있다는 말은 어차피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에스토니아는 실제로 아주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라고 거짓말했다. 일종의 블랙 유머다.
-당신이 소속된 누쿠필름(Nukufilm)은 어떤 곳인가. =누쿠필름은 창립한 지 55년 된 에스토니아의 퍼펫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영국, 폴란드의 스튜디오와 더불어 유럽의 3대 퍼펫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최근에 크게 각광받는 3D나 카툰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곳은 흔하지만 퍼펫애니메이션은 흔하지 않다.
-<거실>이라는 초기작도 그렇고 <인헤런트 어블리제이션>에서도 실사와 섞이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인다.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기법을 픽실레이션이라고 한다. 사람이 움직이지만 프레임별로 붙여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또한 퍼펫애니메이션의 한 종류다. 사람이든 큰 인형이든 작은 인형이든 점토든 종이든 모두 다 퍼펫애니메이션의 범주에 속한다.
-대표작인 <본능>과 가장 최근에 제작한 <커밍 오브 오라클>이 비슷해 보였다. <본능>에서 신과 인간을 다루었고 <커밍 오브 오라클>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소재로 삼았다. =작품을 만들 때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다. <본능>에서 신은 자신의 영혼을 아담에게 심어주고 별을 떠난다. 따라서 아담은 신처럼 열심히 일만 해야 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잘못됐다고 믿고 싶다. (웃음) <커밍 오브 오라클>에서 묘사한 지옥과 천국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작품에는 어떤 주제를 담을 생각인가. =<커밍 오브 오라클>을 끝낸 지 3주 정도밖에 안됐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초현실적으로 다루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