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한번 제대로(?) 잡았다. “감독님들이 입장하고 계신다. 조금 있다 다시 하면 안되겠나?” 대화 시작부터 바쁜 기색이 역력하더니만 급기야는 도중에 인터뷰를 멈춰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럴 만도 하다. 오늘은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개막일이 아니던가. “극장에서 사용할 물품 및 자료를 정비했고 게스트 사전 발권 티켓도 마련해야 했고 지금은 부스에서 개막식 준비 중”이라며 정신없이 바쁜 이 사람을 붙들고 있자니 오히려 미안한 쪽은 우리다. 올해부터 서독제 프로그램팀에서 일하게 된 지정미씨에게 12월8일부터 16일까지의 영화제는 1년간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아니겠나. “순회 상영회 및 올해 개막작을 만드는 제작현장에도 지원을 나갔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건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준비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고 그녀 또한 말한다.
지정미씨는 원래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한 감독 지망생이었다. 친구 소개로 우연히 충무로국제영화제 기술팀 일을 하면서 영화제와 연이 시작됐다. “프로그램팀하고 관련된 업무가 많았고 그러면서 점차 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 업무에 관심이 갔다.” 이후로 환경영화제,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을 거쳐 올해 서독제에 들어온 것이다. 감독은 이제 안 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지금 열심히 하는 일 이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안 하는 눈치다. “찍고는 싶은데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웃음) 그리고 영화 만드는 것보다는 이 일을 하는 게 더 편하다.” 편하게 느껴지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게 진짜 행복한 삶일 수 있으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물론 처음에는 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 업무에 관심이 가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지만 지금은 독립영화라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고 말하는 지정미씨에게, 그런데 프로그램팀원이 당신 한명이어서 도맡아 할 일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거 뭐 대수로운 일이냐는 투다. 일당백을 하면서 자신을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무서운 힘이다. 서독제에 기운 센 일당백 한 사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