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다.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이 할머니는 이제 100살 생일을 넘기셨다. 평생 편하게 살아본 적 없는, 그저 부지런히 살았던 할머니는 90살이 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써놓은 시는 백수(白壽) 기념으로, 자비출판했다. 그런데 그 책이 입소문을 타더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시집의 제목은 <약해지지 마>다. <100세-살아가는 힘>은 할머니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일본의 서점에 갈 때마다, 한국 대형 서점의 일서 코너에 갈 때마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책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 유난할 정도로 시바타 도요의 책이 잘나간다는 건 알았지만, 노인 인구의 급증과 최근 일본사회가 직면한 여러 어려움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이런 시다. 제목은 <당신에게-보이스피싱 사기사건 피해자분에게>. “가족을 위해/ 모아두었던 돈인데/ 못된 꾀에 속아 넘어간/ 그 억울함/ 괴로운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상냥한 사람일수록/ 피해를 입습니다/ 자신을 책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마음을 굳게 먹고/ 조금씩 잊어버려요/ 힘을 내세요// 당신에게는/ 당신을 걱정해주는/ 가족이 있잖아요?// 자, 반드시/ 좋은 바람이 불어올 거예요.” 참고로 말하면 <나라면-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시>도 있다. 시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시는 나도 쓰겠다 싶기도 하고, 100살에 쓴 시집이라서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지? 나는 그랬다. 시집이, 대개의 경우 너무 자주 휘두르느라 둔해진 언어라는 칼을 벼르는 용도였던 내게, 쉽고 수수하고 솔직한 이 시어는 처음에는 아무 자극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100년을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90살도, 80살도, 70살도… 다 너무 많다. 아니, 당장 한달 뒤로 다가온 36살도, 곧 다가올 40살도 다 너무 많지 않은가. 미래에 대한 낙관? 그런 게 어딨어. 이미 충분히 지긋지긋하다고, 태어난 것, 살아 있는 것 하나도 고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60년/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 하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있네”라고 말하는 할머니라니. 남편의 투병 생활과 죽음, 하루 걸러 한번 방에 나타나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 도우미나 간호사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할 수 없는 나 자신. 그래도 “살아 있어 좋았어!” 1911년 6월26일생. 세상 누구보다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할머니는 ‘살아 있다’는 말 뜻대로 ‘살아 있다’. “부모도 남편도 친구도/ 모두 세상을 떠났지/ 하지만 다음 세상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나 웃는 얼굴로 만나고 싶어/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직접적이고 뭉클한 어퍼컷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