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사람들이 고생담을 하나둘 털어놓다 보면 누가누가 가장 큰 상처를 받았나 배틀이 벌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작가가 8년 동안 틈틈이 썼다는 이 일곱 단편에는, 그런 상처 배틀이 열리면 웬만해선 지지 않을 인물들이 나온다. 빚 갚으려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친척 언니, 어렵사리 가족들 주려고 적금을 모으다 갑자기 죽어버린 외삼촌. 도대체 왜 이들은 이토록 불운한가. 왜 세상은 이들이 불운하건 말건 잘도 돌아가는가.
애초에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이 책은 해답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불운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들의 사연을 시시콜콜 소개하고 이들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했나 알리는 것이다. 왼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증상 탓에 자꾸 남편을 때리게 되어 결국 소박맞은 여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울지 않는다는 ‘찍새’라는 별명을 지녔다. 또 암 선고를 받고 말없이 사라진 여자는, 그전까지 매일매일 가정부에게 손수 편지를 써서 반찬이며 집 청소며 꼼꼼하게 집안일을 지시했다. 읽다보면 아주 선량하고 순한 엄마 같은 장년 여성과 전화를 하는 기분이 든다. 얘기가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귀에 쏙 들어오진 않는데, 상대가 나직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을 하니 그냥 끊기 미안해서 계속 듣는 상황 같은.
열심히 살았지만 불운해진 이들에게 근사한 식사가 주어지는 것 또한 엄마풍이다. 비싼 식사 말고,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차린 한상.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남자는 석화죽과 신선한 해물들을 대접받고, 실연당하고 말을 더듬게 된 여자는 서리태 콩국물과 앵두화채를 대접받는다. 작가의 전작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익숙할 마당이나 우물, 고향 등 향수를 자아내는 소재도 자주 나온다. 복고적이고 다소 심심한, 그래서 보편적일 위로의 기술. 요즘 같은 불운한 시국엔 위로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