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 한 사내가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싸구려 술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우수를 자아내는 예스러운 팝 넘버가 흐르는 동안, 팔꿈치가 해진 낡은 재킷 아래로 닳고 벌어진 구두와 수선통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던 중년의 구두닦이 마르셀(앙드레 윌름스), 비록 외상값 때문에 승강이를 벌여야 하는 가난한 신세지만 그에게는 헌신적인 아내 아를레티(카티 오티넨)와 마음씨 좋은 이웃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를레티가 심각한 병에 걸려 입원하게 되고, 마르셀은 밀입국한 가봉 출신의 소년 이드리사(블론딘 미구엘)를 돕게 된다. 밀고자가 나타나고 경찰이 소년을 쫓는 사이, 마르셀과 그의 이웃들은 이드리사를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힘을 합친다.
<르 아브르>는 이들이 구두약 묻은 지폐와 싸구려 위스키, 그리고 로큰롤로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노동자 연대기다. 혹은 삶의 한계를 경험한 어른들이 소년의 남은 꿈을 지켜주기 위해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이다. 가난과 난민, 그리고 질병은 치열한 생존 싸움을 상기시키는 단어들이지만,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이를 가지고 유쾌하고 따뜻한 소품을 완성한다. 그가 구식 카메라와 편집기로 만들어낸 세계는, 촌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레코드판을 듣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전화를 빌리기 위해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고풍스런 공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고민이나 결단의 과정 없이 타인을 돕고, 긴박한 순간에도 무표정을 유지한다. 이들은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레 늘어놓기도 하는데, 종종 그 능청과 무심함이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 다른 층위의 진리를 만들어낸다. 날선 아이러니가 기묘한 페이소스로 이어지는 카우리스마키의 세계에서, 마르셀은 자신의 비극을 가늠하기도 전에 이드리사를 위해 움직인다.
<르 아브르>의 인물들은 원형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선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인간사에 대해 감상적인 해석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감상주의는 현실을 과장하거나 기만하지만, <르 아브르>의 현실은 감정적인 전유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가난과 거친 노동 조건, 그리고 평생 다른 이의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재를 건조하게 제시한다. 선의 자체를 도덕적인 당위로 내세우거나 향수의 대상으로 소모하지도 않는다. 카우리스마키는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 솔직함을 보이는 감독 중 하나다. 디테일을 배제하고 정직하게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그의 영화들은, 그것이 절망을 논하든 기적을 말하든 간에 항상 인간과 삶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 이번 영화 역시 그렇다. <르 아브르>는 남루한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쉽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력한 삶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을 통해 넌지시 인간의 존엄을 일깨운다. 이 소박한 원칙과 믿음이 <르 아브르>의 세계를 하나의 견고한 진실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