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1일은 우울한 날이다. 4개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동시에 출범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12월1일은 굴욕적이면서도 짜증나는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모두가 아는 얘기지만 종편은 보수언론사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선물이다. 선정 방식에서부터 광고와 채널 배정에 이르기까지 종편은 거듭된 특혜로 탄생했다. 그러니까 종편은 종이매체의 어두운 미래를 대비하려는 보수언론사와 이명박 정부 사이의 ‘거래’로 만들어졌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종편을 따내려 했던 이들은 ‘MB어천가’를 지저귀었고 MB정부는 이에 화답했다. 이렇게 불순하게 태어난 종편이 미디어산업, 나아가 한국사회에 어떤 파란을 일으킬 것인지는 강병진 기자가 ‘판판판’에서 정리하기도 했고 수많은 매체가 심층 보도하고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대신 이른바 ‘종편시대’가 만들어낸 고민에 관해 털어놓겠다.
한꺼번에 생겨난 4개의 종편은 광고시장을 교란할 것이다. 이들은 방송국을 운영하기 위해 직접 광고영업을 하는 중인데 이로 인해 광고시장은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한국 미디어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대대적인 전쟁이 펼쳐질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매체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 격화될 것이란 얘기인데 <씨네21> 또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종편을 맞이하는 우리의 첫 번째 고민이다.
사실 모든 종편이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너무 졸속으로 준비했고 제작 시스템이나 투자 규모도 기존 방송사에 비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지금 분위기 같아서는 공중파는 고사하고 케이블의 절대강자인 CJ E&M의 상대가 되지도 않을 듯하다. 하지만 종편으로 옮겨간 스타급 프로듀서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몇몇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은 제작진이나 출연진의 면면으로 볼 때 수준 높은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두 번째 고민이 생긴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예능 등 영상문화 전반을 다루는 <씨네21> 입장에서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딜레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싹 무시하고 싶지만 혹여 폭발적 인기를 얻거나 대단히 수준 높은 작품이 등장한다면 그냥 지나치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세 번째 고민은 더 어렵다. 그것은 연기자에 관한 것이다. 종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상당수 연기자가 영화에도 등장하고 예능프로그램의 연기자 또한 영화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단지 그들이 종편과 관계됐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존재가치마저 무시할 수 있을까.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우리는 그동안 작품을 만든 이의 이념과 사상, 과거 전력이나 사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텍스트 자체만으로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을 판단하고자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이 원칙을 지키고 싶지만 종편 출범은 이 원칙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