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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 그와 그녀 담담(淡淡)한 섬세함으로 공명하다 (1)
정리 김혜리 사진 손홍주(사진팀 선임기자) 2011-12-06

고현정의 '쪽' ♥ 고현정, 음악인 윤상과 재회하다

소진(消盡). 아주 사라져 다 없어져버리다. 말하자면, 페이드 어웨이. 요즘 고현정의 가슴에 직각으로 꽂혀 있는 단어다. “잘 소진되고 싶어요.” 숱한 밤 혼자 되뇐 다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와 나란한 맥락에서, “맑아질 때까지 맑아지겠어”를 올해의 슬로건으로 정했다는 고현정. 그녀가 11월에 만나기를 청한 상대는 뮤지션 윤상이었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윤상의 음악은 사운드도 노랫말도 더없이 담(淡)하다. 나직하고 싱겁기에 또렷한 맛이 없지만, 그 잔잔한 아담한 샘에서 흘러나오는 여음은 천천히 수천 가닥 지류를 이룬다. 그 원천이 중간톤이 풍부한, 정교한 조율의 산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잠깐 윤상의 2집 《Part II》에 수록된 <소년>의 가사를 그대로 빌려 풍경을 하나 그려보자.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소년이 당신을 향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별안간 뒤돌아 뛰어가버린다. 끝내 듣지 못한 고백은 그러나 두고두고 당신을 들뜨게 한다. 어른이 된 어느 날 당신은 깨닫는다. 소리 없는 채로 귀에 맴돌았던 소년의 고백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윤상의 음악은 이를테면 그런 음악이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본 적도 없는데 친근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니 윤상 자신이 소녀에게 차마 말을 건네지 못한 채 고백했던 <소년> 속 소년 같다. 그는 작사가 박창학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노랫말로 쓰고, 거슬러 올라가면 직접 보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음악에 투신하고 몇해 뒤에야 마지못해 떠밀려 했던 가수다. <추억 속의 그대> <입영열차 안에서> 등의 작곡가로 데뷔했던 그는 다른 가수 매니저의 권유로 1990년 1집 《이별의 그늘》을 발표했다. 제안받은 계약금이 필요한 악기를 살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1990년은 전년도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입상한 고현정이 연예 활동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방송가에서 짧게 스쳐갔고 윤상은 2003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사이 고현정은 배우의 자리로 복귀했고 2009년 귀국한 윤상은 프로젝트 팀 ‘모테트’의 EP와 6집을 발표했다. 고현정이 드라마 <선덕여왕>과 영화 <여배우들>을 찍은 분주한 해였다. 현재 고현정은 <미쓰 GO>(가제)를 촬영 중이고 윤상은 DJ 등 알려진 활동 외에 MBC 뮤직네트 채널 개국 특별 프로그램의 음악감독 역을 맡아 작업하고 있다. 그리고 20년 만에 두 사람은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윤상을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동료 가수 성시경은 그에 대해 “귀가 매우 발달해 미세한 차이를 짚고 그것을 음악에 반영한다. 요즘 미디 음악을 하는 팀도 윤상 이상 세련되게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한다. 윤상은 감식안은 예리하나 그 판단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의 변화를 책임지지 못할 다음에야 무례에 그칠 공산이 현실적으로 크다고 체념해서다. 고현정은 무엇보다 그의 온유함 뒤에 가려진 단호함에 깊은 신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하는 윤상의 모습을 뒤늦게 찾아보고 그녀에게 동의했다. 윤상은 다른 심사위원들이 우수한 참가자를 따뜻한 수사로 상찬할 때에도 감정을 배제하고 각론을 짚는 코멘트를 하고 있었다. “진짜 훌륭해요”보다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컨트리 싱어가 될 수 있겠어요”가 그의 어법이었다. 시간은 윤상을 좀더 사교적인 남자로, 고현정을 보다 아늑하고 안전한 관계를 원하는 여자로 바꾸어놓았다. 배우 중에 팬이 드물다는 윤상의 말에 고현정은 내가 일당백이 되겠노라 웃었다. ‘그땐 몰랐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가 두런두런 오가는 동안 해 그림자가 길어지더니 땅거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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