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도시오는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진 점잖은 아저씨다. 교토에서 한국어교실 녹두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안성기에 반한 일본인이다. 무라야마와 안성기의 첫 만남은 1994년 천도 1200주년을 기념해 교토에서 열린 도쿄국제영화제에서다. 무라야마는 일주일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안성기의 통역을 맡았다. 안성기의 인품에 반한 그는 2008년 다시 교토를 방문한 안성기를 찾아가 평전을 써도 되는지 물었고 허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 반이 흘러 올해 4월 일본의 유명 출판사인 이와나미서점에서 안성기 평전이 출간됐다. 일본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그에 대한 일본 내의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한국의 현대사와 국민배우 안성기를 엮어낸 무라야마에게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가 나오게 된 과정을 물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1978년인가 79년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김산이라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책 <아리랑>을 읽고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과 아주 다른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나도 젊은 시절이라 한국 사람에 대해 강하게 끌렸고 그들과 직접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성기라는 배우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나. =안성기 선생님이 14년 만에 다시 교토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운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교토에 있는 리쓰메칸대학에서 주관하는 작은 영화제인데도 안성기 선생님이 교토를 다시 방문한다는 게 보기 드문 행운이 아닌가 싶었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을 한국 현대사와 엮어내는 시도는 일본인으로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문화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지만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기도 했다. 대학은 졸업하지 않고 자퇴했다. 그 당시의 유행 같은 거였다. 어쨌든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한국영화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나 역사적인 주제를 적확하게 비춰주어서 현대사를 말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영화를 배치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영화에 안성기 선생님이 많이 나오셨기 때문에 한국 현대사와 항상 같이 걸어온 느낌이 들었다.
-1986년에 한국에 왔다고 들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책에도 영향을 미쳤나. 당시의 한국을 어떻게 봤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마침 역사가 움직이는 순간에 서 있었다. 일본에서도 한때 학생운동이 퍼지고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는데 나보다 2~3년 선배들이 주도했던 것이라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내가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한국에도 민주화운동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학생들이 뛰어다니고 돌을 던지고 최루탄을 맞는 것을 보며 역사가 움직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의 5부는 인터뷰로 구성됐다. 어떻게 진행했나. =이 책을 쓰려고 했을 때 마지막 부분은 꼭 직접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려면 책으로 나온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우선 출판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운 좋게 이와나미라는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간이 결정됐고 바로 인터뷰 허락을 구했다. 지난해 7월3일에 만났다. 안성기 선생님이 <7광구> 촬영 중이었는데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두 시간 정도 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의 ‘나가는 글’에 보면 “이 책은 안성기에 대한 중간보고”라고 했다. 그렇다면 완결판도 나오는 건가. =(웃음) 그것은 나보다 한국 분들이 하실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외국 사람이고 늘 옆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 책을 쓸 때도 그런 부분이 어려웠다. 보통 평전을 쓸 때는 그분의 가까이에 계시는 분이나 기자가 계속 따라다니며 쓰지 않나. 그러면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도 쓸 수 있고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개된 자료를 통해 썼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감있게 평전을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인가. =그렇다. 한국 사람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화가 이중섭이라든지 리영희 선생님의 평전을 번역하고 싶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님의 책이 일본에서 출판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용은 좋겠지만 과연 일본 독자가 얼마나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이소선 여사도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