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치료라 하여 따뜻한 물 위에 둥둥 떠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스파 코스가 있다.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비싼 서비스로 보통은 큰 수영연습용 ‘판때기’(적절한 단어를 못 찾음;) 같은 기구를 이용하는데, 급기야 건장한 젊은 남정네가 판때기 대신 직접 물속에서 고객을 양팔에 안아 모시는 서비스를 선보이는 곳이 있단다. 강남의 한 병원이 운영하는 건강센터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짐작건대 엄청난 비용을 자랑할 테지만, 이미 피부클리닉 연간 회비 1억원 정보를(만) 갖고 있는 선진국민인고로, 가격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과연 누군가의 그런 과도하고도 밀착된 노동을 통해 ‘안티에이징 힐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말 그러고도 힐링이 될까. 불편하고 송구해 더 늙지 않을까. 있는 집 사람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우리 동네 미용실 정 실장에게 물어보니, 있는 집 처자들은 그런 서비스를 기꺼이 쾌적하게 받는다는 것이다(이른바 룸살롱의 접대는 그 ‘궁극’일 텐데, 이를 즐기는 이들은 범법을 넘어 히스테리성 배설증을 지닌 딱한 이들이므로 논외로 하자). 그런 서비스는 게다가 ‘싸모’들이 아니라 ‘따님’들이 받는다고 정 실장은 덧붙였다. 싸모들은 그럼…(잘 몰라서 이하 생략).
있는 사람들의 사치는 끝이 없고,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상태. 한-미 FTA가 그려낼 머지않은 미래 풍경이다. 이웃 중 한명은 “이판사판이니 그냥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애들도 학교 가기 싫다면 그냥 놀리자”고 제안한다. 혹시 여윳돈이 좀 있으면 보장성 보험이나 더 들어두자고, 머지않아 숨만 쉬고 살아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고 말이다. 날치기한 여당 의원들도 무슨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자포자기로 동참한 기색마저 엿보인다. 뭐에 씌인 게 아니라면 99% 국민의 생존권, 생명권이 걸린 이런 중차대한 일을 이렇게 처리해버리다니, 며칠이 지나도 어리둥절하다.
우리 헌법은 공동체 생활과의 조화·균형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사유재산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초국적 자본의 무단통치 길을 터준 한-미 FTA는 우리의 헌법과 법령에 굴하지 않는다. 형태조차 가늠 안되는 괴물이다. 1대 99의 기형사회를 초헌법적으로 고착하는 일을 외적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뽑은 이들이 벌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든 되돌려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