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돌비사의 수석부사장인 그린필드 더글러스가 디지털 시네마서버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전세계 영화제들의 주요 화두는 ‘디지털 상영문제’였다. 3대 메이저 영화제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토론토영화제에서도 빈번한 영사사고가 있었고, 베니스나 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9월에 열렸던 아시아의 어느 영화제는 상영 중 반 이상이 영사사고였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몇 차례 상영 중단 사례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의 일반 상영관에서도 드물긴 하지만 가끔 영사사고가 일어난다. 짧은 기간 동안 매회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는 그렇다 쳐도 똑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트는 일반 상영관에서도 영사사고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과거에는 영사사고가 나도 잠시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다시 상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상영이 취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모든 원흉(?)은 ‘디지털 상영’, 그중에서도 DCP의 표준화가 문제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디지털 상영은 DCI(Digital Cinema Initiative) 규격을 준수하는 전용 서버를 이용해 DCI 규격의 파일을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DCI 규격을 선도적으로 잘 따르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며 장비의 보급 속도, 소프트웨어 버전 업그레이드가 상당히 빠르다. DCI 규격의 핵심은 JPEG2000이라는 파일 포맷을 마스터링하는 것이다. JPEG2000 파일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코딩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있으며 DV4-Clipster, 큐비스, 도레미 전용 Encore, 큐브 전용 Encore 등이 그것이다. 사실 국내의 멀티플렉스관에서 DCP 영화 상영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전용 마스터링 장비로 각 영화관의 서버환경에 맞는 DCP를 배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제의 특성상 해외에서 다양한 DCP 영화를 상영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DCP 패킹업체가 천차만별이고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사양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호환성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JPEG2000이라는 파일을 만들어내는 환경이 국내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DCP 패킹업체에 마스터링을 의뢰할 경우, 그 나라의 자국시장의 서버 펌웨어 버전이 1.0이고, 국내 영화관의 펌웨어 버전이 1.5라면 우리나라 영화관에서는 펌웨어 버전을 다운그레이드하지 않는 한 이 작품은 상영할 수 없다. 즉 상영하고자 하는 영화관의 장비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서는 호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장별로 상이한 DCP 서버간의 호환성도 문제다.
하지만 상영관의 장비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먼저, 파일시스템 문제. 윈도, 맥, 리눅스 등 DCP 패키징 작업실 OS에 따라 파일시스템은 호환이 불가하다. DCP 서버의 전반적인 운영체제가 리눅스를 기반으로 운용됨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혹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일부 국가에서는 윈도 기반으로 패키징을 해서 보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서버에서는 인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안인증코드(KDM) 문제도 있다. 최근 배급사들은 보안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DCP 파일을 보내더라도 KDM을 알아야만 상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배급사들은 이 KDM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상영날짜에 맞춰 알려주는데, 이 때문에 사전 테스트를 하지 못하고 상영하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 영사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심지어 국가별로 다른 정격 전압의 차이 때문에 파일재생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35mm 영사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올해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은 ‘디지털 상영의 표준화’를 시급한 선결과제로 정하기도 했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 중에 가끔 35mm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그립다는 분이 있다.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00%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이유는 좀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