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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느슨하고 휴머니티에 대한 긍정은 급하다 <퍼펙트 센스>

원인 모를 질병이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된다. 사람들은 감정을 발작적으로 돌출시키며 감각을 잃어간다. 이들은 지독한 비탄을 경험한 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고, 공포와 허기 속에서 미각을 상실하며, 분노를 표출한 뒤 청각을 잃는다. 지구의 멸망과 심판, 그리고 각종 음모에 대한 추측 속에서 생존 의지와 절망이 충돌하고, 사람들은 고립된다. 기존의 관계조차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두 남녀, 과학자 수잔(에바 그린)과 요리사 마이클(이완 맥그리거)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은 사라져가는 감각들에 의지해 소통을 이뤄나간다.

<퍼펙트 센스>는 적은 예산으로 전대미문의 비상 상황이 주는 혼란을 비교적 잘 구현해낸다. 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현실에 적응해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람들은 바이올린 소리로 냄새를 상상하거나 스피커를 붙들고 진동을 느끼는 등, 남아 있는 감각을 가지고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누군가는 폭동을 일으키고 약탈을 감행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삶이 계속될 거라는 믿음으로 타인을 포용한다. <퍼펙트 센스>는 암흑과 진공 속에서도 함께 맞댄 살의 감촉, 사랑이라는 완전한 감각만은 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삶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사랑의 힘을 강조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감각의 상실로 인한 공포와 격통을 치열하게 담아내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작품이 주는 따뜻한 메시지가 감상적, 혹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영 아담> <할람 포>의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과 고혹적인 매력의 에바 그린, 그리고 이완 맥그리거가 만들어내는 좀더 긴장감있는 묵시록을 기대했지만, 갈등은 느슨하고 휴머니티에 대한 긍정은 급하다. 다소 설명적인 내레이션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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