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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이 폭풍유머 ㅋㅋㅋㅋㅋㅋ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1-11-24

<목욕의 신> 하일권

네이버 목요웹툰 <목욕의 신>의 독자 댓글은 ‘ㅋ’로 시작해 ‘ㅋ’로 끝난다. 누군가는 성의없는 댓글이라며 토를 달지도 모르겠지만 이 웹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해 ‘ㅋ’의 행렬에 동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말끔하게 생긴 성인 남자들이 팬티 한장만 걸친 채 서로의 때를 1mm라도 더 밀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아낼 재간이 없다. <목욕의 신>은 최고급 목욕탕인 금자탕에서 일하는 목욕관리사(속칭 ‘때밀이’)들의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은 요원하고 학자금 대출빚을 못 갚아 대부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허세’가 주인공이다. 허세는 대부업자를 피해 들어간 목욕탕에서 우연히 한 노인의 등을 밀어주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노인은 목욕업계의 대부이자 금자탕의 회장님이었다. 허세의 때밀이 솜씨에서 우주의 평온함을 느낀 회장님은 허세의 빚을 다 갚아주겠노라며 금자탕의 목욕관리사로 일할 것을 권한다. ‘신의 손’이라 불리며 기세등등하게 금자탕에 입사한 허세지만 손님 몸에 때수건 하나 올리지 못하는 굴욕적인 수습 생활이 시작된다.

하일권 작가를 관심있게 지켜봐온 독자라면 <목욕의 신>의 폭풍유머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2006년 <삼봉이발소>로 데뷔한 이래 그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감동’과 ‘드라마’였다. ‘외모 바이러스’(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러 다니는 <삼봉이발소>의 삼봉이나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소녀를 보듬는 <안나라수마나라>의 마술사처럼 하일권 작가의 웹툰에서 주인공들은 대개 사회의 귀퉁이에 머물며 중요하지만 쉽게 지나치게 마련인 가치들을 일깨워주는 인물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때밀이’의 삶에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목욕의 신>도 전작의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는 작품은 아니지만 하일권 작가가 작품과 소재의 무거움을 조금은 덜어내고 싶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안나라수마나라>를 지난해에 끝내고 나서 많이 지쳤다. 작품이 어두운 톤이다 보니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더라.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그리고, 독자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방향은 잡았지만 밑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5개월 동안 잡고 있던 새 프로젝트를 엎어야 했다. 그런데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며 찾아간 찜질방에서 ‘잭팟’은 터졌다. “목욕탕에 들어가 혼자 앉아 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조용하고, 시원하고. 불현듯 ‘목욕탕 만화 재밌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날 탕 안에서 <목욕의 신>의 줄거리 대부분을 구상했다.”

즉흥적인 탄생 비화를 지닌 <목욕의 신>은 정밀한 자료 조사보다는 작가의 평소 관심사와 순간의 상상력이 반영된 만화다.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엎고 시작한 만화라 준비 기간이 촉박했다. 대부분의 목욕관리사 분들이 ‘때밀이 전문 교습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목욕탕에 취직한다고 하더라. 취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료 조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빠듯한 연재 일정은 오히려 <목욕의 신>의 재미를 더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작가의 다급함이 없었다면, 그리스 신전처럼 위풍당당한 목욕탕과 그가 즐겨보는 미드였던 <스파르타쿠스>의 검투사들처럼 목욕관리사들이 수건을 내리치는 ‘목욕투’ 장면,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처럼 때밀이용 메스로 때를 벗겨내는 장면 등을 감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목욕관리사를 뽑는 ‘목욕 대회’ 에피소드 집필을 앞두고 하일권 작가는 최근 <슈퍼스타 K> 시즌3의 노래를 열심히 듣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슈퍼스타 K>처럼 목욕관리사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탈락하고, 심사위원들이 “제 점수는요~”를 외치는 장면이 즉흥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닐까. 목요일마다 ‘ㅋ’를 댓글에 입력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다 보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일권 작가의 작명법

“클럽가에선 나름 알아주는 패션리더, 에스프레소와 브런치는 코리안헤럴드의 베스트프렌드…”를 읊으며 시도때도 없이 셀카를 찍는 <목욕의 신>의 허세는, 이름 그대로 허세로 가득 찬 캐릭터다. “요즘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 허세 부리는 게 뻔히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개인 홈페이지를 구경하러 돌아다니다가 이런 ‘있어 보이는 글들’을 읽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 한편으론 그런 심리가 이해도 됐다. 누구나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려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한편 화려한 때밀이 솜씨를 자랑하는 목욕관리사의 이름은 김성공, 열심히 노력하기로는 금자탕 최강인 목욕관리사의 이름은 ‘강해’다. 압권은 ‘목욕의 신’에 부여한 이름이다. “제우스의 아들이자 신들의 목욕을 관장하는” 신이었다며 작가가 은근슬쩍 그리스 신화 사이에 끼워넣은 가상 신의 이름은 ‘테미러스’다.

이름이 곧 캐릭터의 개성을 대변하는 작명법은 하일권 작가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 수영복을 너무 좋아해 반드시 여자 수영복을 입고 수구를 하는 <두근두근두근거려>의 주인공 이름은 배수구였으며, 오직 성공을 위해 1등만을 고집하는 <안나라수마나라> 주인공의 이름은 나일등이었다. 이처럼 하일권 작가의 웹툰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유심히 보면 그 인물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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