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 인근의 러브 모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얼핏 보면 마네킹이지만 한 여자의 사체는 두개의 자아가 분리된 듯 절단되어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과 교복을 입고 있는 두개의 마네킹에 조립되어 있다. 여자의 얼굴은 찾을 수 없으며 대신 벽에 ‘성’(城)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성(成)이라는 단어는 카프카의 소설 <성>까지 확대되며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장면이 바뀌면 마치 없어진 얼굴을 찾으려는 듯 수많은 얼굴 사진들이 펄럭이는 가운데 카메라는 이즈미(가구라자카 메구미)의 사진으로 들어간다. 이즈미는 저명한 소설가의 평범한 아내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단순한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선다. 남편은 정확하게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9시 정각에 집에 들어온다. 집 안을 지배하는 것은 9시를 향해서 돌진하는 시계 소리와 이즈미가 준비하는 차 따르는 소리, 그리고 강박적으로 정확하게 정렬된 신발이다. 이즈미는 몇분 전부터 문 앞에 서서 남편을 기다린다. 결국 이즈미는 일상을 탈출하고, 전작인 <차가운 열대어>에서 한 사내의 파멸과 그 가족의 붕괴를 다뤘던 감독은 마찬가지로 이즈미의 파멸과 이 가정의 붕괴를 보여준다.
단번에 마니아층을 형성한 <자살클럽>부터 소노 시온의 영화에는 많은 특징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신체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자연을 정복해온 인간은 마지막으로 남은 자연, 하지만 절대 자연이라고 부르지 않는 인간의 신체까지 정복하고 있다. 그 오만 뒤엔 더이상 무엇이 남는가? 소노 시온의 영화들이 파멸과 붕괴를 다루지만 단순한 파멸이 아니라 존재의 공허함까지 이어지는 것은 이처럼 벼랑 끝에 선 인간의 실존을 해부하는 까닭이고 신체훼손이나 그가 집착하는 신체와 물질성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는다. 이 영화에서 소노 시온은 미츠코와 이즈미가 반복하는 시구와 언어의 문제를 통해 의도적으로 물질성을 더 강조한다. 그녀의 핏속과 눈물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이즈미의 생명은 그녀의 처절한 절규에 실려 공허한 삶의 허공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