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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21세기의 ‘얼터너티브’를 위하여
문석 2011-11-14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이야기만 들었던 <1991: The Year Punk Broke>가 DVD로 발매된 것이다. 이 영화는 소닉 유스와 너바나 같은 미국의 포스트 펑크 계열 밴드들이 1991년 8월과 9월 사이 유럽 일대를 돌며 공연한 모습을 상세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영화제 등에서만 상영된 이 영화는 투어의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9월 미국에서 DVD로 출시됐다(한국에 공식 수입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서점을 통하면 일주일 안에 배송된다). 슈퍼8mm 카메라 한대로 촬영된 까닭에 화질과 음질은 끔찍하지만 주인공인 밴드들이 DIY 정신과 그런지 사운드를 내세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잘 어울리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엄청난 관중 앞에서 과격한 연주를 펼치는 무대 위 밴드들의 모습도 흥미롭지만(맨발로 <Smells Like Teen Sprite>를 연주하는 너바나의 모습이란!), 이 다큐의 진정한 맛은 보름 남짓한 투어 동안 이들이 무대 바깥에서 벌이는 기행이다. 소닉 유스의 서스턴 무어가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청년문화가 대기업에 의해 독점됐는데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묻는 장면이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몽롱한 모습은 새로움을 추구하던 이들 예술가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펑크가 터진 해’라는 영화 제목처럼 1991년은 대중문화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무엇보다 그해 9월24일 너바나의 ≪Nevermind≫가 출시됐기 때문이다. 미국 음악잡지 <스핀>은 올 8월호를 이 앨범 출시 2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으로 만들었는데, 이 앨범의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앨범이 촉발한 20년 전의 ‘그런지록 혁명’ 또는 ‘얼터너티브록 혁명’을 현재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스핀>에 따르면 90년대판 문화혁명이라 할 만한 이 사건은 젊은이들의 ‘분노’에서 기인한다. 대처와 레이건이 지배했던 80년대적 가치에 대한 분노 말이다. 공기업의 대대적 민영화, 대규모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공포 분위기 조성 등에 대한 반발이 젊은이로 하여금 이 단순하고 과격하기 짝이 없는 음악에 열광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혁명’은 코베인의 자살과 음악의 상업화로 인해 찻잔 속 태풍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20세기 마지막 청년문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우리 또한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점거 운동’이 전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것은 21세기 초반을 지배하고 있는 탐욕이라는 가치에 대한 공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건 분노에 기반을 둔 새로운 문화가 태어날 가능성 또한 높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새로운 문화는 새로운 곳에서 등장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꾸준히 비주류, 반시스템, 독립문화를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독립영화로부터 독립적인 영화, 인디음악보다 인디적인 음악이 출현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