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편의점 그리고 고시원은 2000년대 들어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점거하다시피한 장소다. 오늘날 젊은 영화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자 그들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를 얻은 공간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티끌 모아 로맨스>는 가난한, 혹은 돈에 얽매인 20대 후반 남녀의 관계를 바로 그 옹색하고 남루한 자리에서 풀어가는 로맨틱코미디다. 월세가 밀려 길에 나앉게 된 철부지 백수 천지웅(송중기)에게 옆집 옥탑방의 구두쇠 구홍실(한예슬)은 시키는 대로 하면 두달 동안 500만원을 모으게 해주겠노라 제안한다. 지웅은 홍실이 사는 옥상의 텐트로 거처를 옮기고 그렇게 하고 싶은 일만 아는 남자와 해야 할 일만 아는 여자의 별난 동거가 시작된다. 코미디로서 <티끌 모아 로맨스>의 재미는 주로 주인공 커플이 ‘티끌’을 모으는 오만 가지 방법에서 나온다. 홍실과 지웅은 자본주의 서울의 스캐빈저(scavenger 청소동물)다. 폐품팔이는 기본이고 결혼식 피로연 잔반으로 식량 충당하기, 남의 쓰레기 봉투에 우리집 쓰레기 나눠서 눌러담기 등 백출하는 아이디어는 서글픈 폭소- 희귀한 조합의 감정- 를 자아낸다. 그러나 모든 유머가 적중하진 않아서 예컨대 <황산벌>의 ‘거시기’를 응용한 듯한 말흐리기 개그는 중요 플롯 포인트를 모호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륙’하기까지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데, 이는 주로 홍실이 정확히 지웅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도우려는 의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서다.
<티끌 모아 로맨스>는 감정적, 경제적 여유를 박탈당한 우리 사회의 적잖은 20대에게 연애가 사치라는 궁색한 진실을 파고든 눈 밝은 기획이다. 가난은 수많은 사랑영화에 등장하지만 부유한 인물을 끌어들여 위기를 돌파하거나 갈등을 제고하지 않는 경우는 희귀했다. <티끌 모아 로맨스>는 이를테면 좋아하는 여자를 구하러 남자가 강물에 뛰어든 시퀀스를 앰뷸런스 출동비 청구로 마무리짓는, 그런 영화다. 김정환 감독은 연명하기 위해 곁에서 애쓰다보니 연민이 솟고 그러다보니 서로가 어여뻐져 함께하면 고역의 무게가 덜해지리라 믿게 되는 과정을 무난히 그려낸다. 단, 둘의 곤궁은 세대문제로 조명되진 않는다. 지웅은 개인적 태도와 능력, 홍실은 과거사가 직접적 원인으로 끌려나온다. 서브플롯 장면이 주인공끼리 붙는 시퀀스에 비해 현저히 밀도가 낮은 이 영화에서 배우는 중요한 화제다. 홍실이 된 한예슬은 고음부 현악기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호들갑과 불안정함 뒤에 잠복해 있던 신산한 얼굴을 내비친다. 송중기는 명암을 다 보여준다. 적극적이며 총명한 이 배우는 어리바리한 연기에서 장면을 지나치게 파악하고 열연하는 약점을 노출한다. 공표(announce)하는 듯한 발성도 간혹 부담스럽다. 그러나 지웅이 궁지에 몰려 단호해지고 폭발하는 순간 송중기는 설득력을 발하며 빛난다. <티끌 모아 로맨스>는 역설적으로 이 배우가 가진 남성적 장르 연기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