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FTA 7년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누적 적자 89억달러. 10조원에 육박한다. 켁. 지난 7월 발효된 한-EU FTA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출 증가율은 둔화한 반면, 수입 증가율은 치솟아 넉달간 무역수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7억달러 악화됐다.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맞다. 가령 한국은행이 집계한 경상수지는 지난 9월에도 흑자였다. 19개월째다. 하지만 그건 수입이 줄어서다. 불황으로 물건을 만들어도 팔 수가 없으니 물건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나 장비 등의 수입을 줄인 것이다. 아무리 수출이 늘고 외국인 투자가 많아져도 산업기반의 몰락과 다국적 큰손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이면의 피해를, 이렇듯 ‘수치’는 상쇄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정부의 논리는 “늦어지면 호주, 캐나다, 멕시코, 싱가포르등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과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네 나라는 우리와 산업기반이 대단히 다르다. 게다가 외교통상부가 ‘한-미 FTA 독소조항주장’에 대한 반론이라고 뿌린 자료를 보면 미국과 FTA를 체결해 발효 중인 나라는 17개국으로, 위 네 나라 외에 바레인, 칠레,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이스라엘, 요르단, 모로코, 니카라과, 오만, 페루가 있다. 까놓고 이중 닮고 싶은 나라 있는가. 이 자료는 한-미 FTA 반대파가 오스트레일리아를 오스트리아로 잘못 쓴 것까지 주요하게 언급하며 사실관계가 부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디테일에 강하면서도 미국-호주 FTA는 투자 관련 분쟁을 자국 법원에서 해결하도록 한 것은 무시한다(편의에 따라 생략과 확대를 반복하는 32장짜리 이 찌라시를 읽으며 문득 ‘포르노의 원리’가 떠올랐다).
만화 <한-미 FTA 바로알기>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등장시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며 ‘GDP 6% 증가, 일자리 34만개’, ‘미국시장 선점’, ‘경제·사회제도 선진화’를 이득으로 강조한다. 전국의 포장마차 운영자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까마는 만화가 강풀의 한마디를 전한다. “잘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보통 사람들의 현재를 희생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국민의 30%가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한 멕시코로 가느냐,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미국과의 FTA 협상을 멈춘 스위스로 가느냐. 다른 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