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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 예지원의 하이킥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가지 품새

<더 킥>

예지원이 늦게 왔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더 킥>의 관련 일정이 연일 줄을 잇는 중이고 개봉 직전까지는 매일 밤과 아침이 피곤하기만 할 것이니 비교적 오전에 잡힌 인터뷰 시각에 몇분 늦는 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탓하자고 시작한 말이 아니다. 놀라워서다. 늦게 온 예지원은 뛰어다녔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바깥에서 찍어도 되겠냐는 사진기자의 조심스런 물음에는 무조건 예스. 어디서 찍나? 여긴가? 아님 저긴가? 이리로 뛰고 저리로 뛴다. 늦게 왔으니 미안하다는 표식인데, 바로 그 순간에 그녀만의 활기가 엿보인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방콕에 사는 태권도 사범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 뒤후리기의 일인자. 그런 에너지 넘치는 역할에 그녀가 얼마나 제격으로 보였을지 이해가 된다.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날아다니는 예지원을 보자니 그녀가 올려 찬 하이킥의 품새가 역시나 궁금하다. ‘예지원의 하이킥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가지 품새’를 모았다.

방콕

<더 킥>은 방콕에서 촬영했다. 배우에게 촬영지란 함께 출연하는 배우나 감독만큼 교감의 상대방으로서 중요하다. 게다가 국내도 아니고 해외다. 예지원은 방콕과 어떤 교감을 나누었을까.

“타이 사람들이 한국 연예인들을 정말 좋아한다. 촬영 때문에 3층짜리 집을 한채 빌렸는데, 하필이면 에어컨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인근 미용실을 여배우 대기실로 잡았는데 미용실 아주머니들이 날 안 보는 척하면서 계속 보는 거다. 수줍음이 많고 착하다. 돌아올 때는 잘해준 게 고마워서 일부러 마사지를 받았을 정도다. 그렇게 두달 반 정도를 방콕에서 지냈다. 관광객으로는 가보지 못할 그런 곳들이었다. 낮에는 늘어져서 자다가 밤에는 일어나서 사람 뒤를 쫓아다니는 개들 때문에 무서워서 밤에 못 나간 거, 그건 좀 아쉬웠다. (웃음) 하여간에 방콕을 정말 좋아한다. 거기 사람들에 도취됐다. 그들은 손을 모아서 인사를 하지 않나. 손이 높이 올라갈수록 존경심이 담긴 거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나도 손 모아 인사하는 게 습관이 됐다.”

태권도

예지원은 원래 태권도 유단자다, 라고 말한다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믿게 되어 있다.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실은 그렇지 않고 태권도를 기본으로 한 액션영화 <더 킥>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1단을 땄다. 열심히 배웠다는 소문이 있다. 써먹기도 잘했을까.

“원래 한 체력 한다. 그런 내가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체력 훈련을 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다. 영화를 보면 뒤후리기하면서 턴하는 게 있다. 그게 처음에는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는 거다. 남들은 그래도 빠른 속도로 배운다고 칭찬해줬지만 스스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이거 영화에 못 쓰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러다 뒤후리기 촬영하는 날짜가 다가왔는데 원래 맞아주기로 한 상대방 타이 배우가 못하겠다고 하는 거다. 타이에서는 아이들의 머리도 만지면 안되는 게 예의라며 자기는 못하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조재현 선배쪽으로 다들 시선을 돌리더라. (웃음) 감독과 조재현 선배는 정말 얼굴을 차라고 하더라. 그게 조 선배의 마지막 신이었는데, 그렇게 한방 맞고 한국에 돌아가신 거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나와서 뿌듯한 장면이다. K타이거즈(태권도 시범단)에서 압구정에 태권도 도장 하나 같이 차리자는 제안을 했을 정도다. (웃음)”

액션영화

“안녕하세요. 액션 영화배우로 거듭난 예지원입니다”라고 영화 시사가 있던 날 그녀는 말했다. 액션영화는 좋아하는 마음, 따라주는 몸이 없으면 도전할 꿈도 못 꾸는 장르다. 요리를 격투하듯이 할 때나 남편을 발차기로 위협할 때나 적들과 맞서 악어떼 한가운데서 싸울 때 예지원은 새로운 열정과 재능을 불태운다.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이 다 내게 엄청난 무술 재능이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걸 못하게 누르려고 무용을 시키신 거다. (웃음) 촬영현장에서는 쉬다가도 나도 모르게 발차기를 하고 텀블링을 하고 있더라. 아, 그리고 현장은 거의 날아다니는 ‘인간 새’들의 향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동작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아, 아름답다 하면서 도취하고 구경하고 칭찬하게 된다. 물론 나도 열심히 하고 잘한 장면이 있다. (웃음) 동물원 악어떼 사이에서 액션하는 장면인데, 정말 별거 다 했다. 슬랩스틱의 진가를 보여줬고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내가 이것저것 하니까 감독님도 무척 길게 찍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이 잘렸다. 악어가 전부 CG라서 그 장면의 컷을 많이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친구들

예지원은 사람에게 경계심을 건네지 않는 드문 여배우다. 외국 스탭과 배우를 포함한 <더 킥> 현장에서는 어떠했을까. 함께한 사람들에 관해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중에 일부를 전할 수밖에 없다.

“액션영화 <옹박>을 만든 감독님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근육질에 엄청나게 키가 크고 날씬한 분이겠구나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후덕한 대학교수 같은 분이 나오셨다. 배우들을 많이 아끼고 배려심이 많고 현장에서 큰소리 나는 거 싫어하시고 겸손하고 무엇보다 인격자다. 극중 ‘멈’ 아저씨는 그야말로 타이의 국민배우다. 또 극중 ‘지자’는 타이의 여자 ‘옹박’이고. 그들은 부와 명예가 많은데도 참 소박하다. 조재현 선배는 언제나 모범을 보이시고 아들과 딸로 나온 태주와 태미는 신인인데도 끼가 많다. 내가 엄마 역할을 하더라도 촬영하는 순간이 아니면 엄마라고 못 부르게 하는데 그애들은 그러라고 할 정도였다. 이젠 친구를 넘어 가족이다. 그들과 2탄을 찍고 싶다.”

4차원

예지원을 4차원이라고들 한다. 흔하지 않은 타입의 인간형이라는 말로 들린다. 배우로서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그녀의 남다른 순수함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매니저가 그러던데, 예전에 4차원 연예인 이름이 거론되면 내가 항상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빠져 있기에 섭섭했단다. 언젠가는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노인 한분이 나를 보며 이름이 생각 안 났는지 ‘저거, 이름이 뭐지, 저거, 4차원 배우’ 하시더라. 그때 완전히 빵 터졌다. 그동안 했던 역할이 준 이미지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본다면 정극과 코미디를 두루 해왔다고 생각한다. 뭐, 어쨌든 비호감은 아니라는 말이니까 일단은 나쁜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난 정상인이다.”

전환점

전환점이라는 말은 손쉬운 말이다. 배우를 포함하여 창작자들과 대화할 때 각별히 유의하여 써야 할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이도 있다. <하하하> <달빛 길어올리기> <더 킥>을 거친 예지원이 그렇다.

“<하하하> 때는 여름에 바캉스를 어디로 갈까 하다가 홍상수 감독님이 통영으로 오라고 하기에 공짜로 바캉스를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다. 준상 오빠하고 ‘우리 커플이 라스트신이야’라고 하며 감격해하던 기억도 난다. <달빛 길어올리기>에서는 내가 맡은 인물이 한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사실 <달빛 길어올리기> 출연 직전에는 배우로서의 길을 놓고 좀 고민했다. 그때 출연 결정을 알리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얼마나 좋았겠나. 다른 분과 다른 작품 출연을 상의하던 자리였는데, ‘임 감독님과 일하게 되다니…’ 하면서 내가 그만 울며 자리를 뛰쳐나가버렸다. 같이 있던 분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저거 4차원이구나 하셨을 거다. (웃음) 지금은 차분한 정극 연기부터 청순가련형을 넘어서는 비련형의 역할까지 다양하게 많이 들어온다. 게다가 이번처럼 새롭게 <더 킥>이라는 액션영화도 찍었으니 이 세 감독님이 나의 목숨을 살려주신 은인들이다. 이 좋은 기회를 잘 다져서 이제 다가올 40대를 잘 보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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