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란 다른 방식의 사유다.” 1960년대 중반 일군의 젊은 독일 미술작가들이 ‘자본주의적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 당시, 멤버 중 한 사람인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야심차게 던진 말이다. 이 색다른 사유 방식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독일 출신 현대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게르하르트 리히터 페인팅>(Gerhard Richter Painting)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카메라는 2009년 봄에서 여름까지 추상화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틀리에에 머물며 작업과정을 기록한다. 스크린을 통해 노화가의 작업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이 스친다. 노구를 이끌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그릴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에 커다란 붓으로 획을 긋거나, 그 위로 널빤지로 긁어내는 동시에 덧칠하는 모습을 좇아가다보면 ‘과연 계산하며 그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연에 맡기는 걸까?’라는 의문이 마음속에 인다. 영화에는 작업장면뿐 아니라 전시회 준비, 어시스턴트의 준비 작업, 60년대 리히터의 인터뷰 자료화면 등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배경으로 나오는 12음 기법의 현악기 음악은 그의 페인팅 작업과 어우러져 그리는 작업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긴장을 이끄는 것은 카메라, 작가, 작품의 삼각관계다. 위기의 순간도 있다. 리히터는 몇주를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을 마음에 안들어하며 “관찰당하며 그림 그리는 일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 한마디에 다큐멘터리 만들기의 고충이 전해져 온다. 코린나 벨츠 감독은 거장의 불평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내며 가장 내밀한 창조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1932년생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동독 지역에서 혈혈단신 서독으로 왔다.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신념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는 그를 그림 그리기로 인도한 기본 동력이었다. 서독으로 넘어온 뒤 그는 부모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신과 부모와의 옛날 사진을 늘어놓고 소회를 전한다. 그럼으로써 <게르하르트 리히터 페인팅>은 한명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독일 분단 역사로까지 끌어올린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리히터가 준비될 때까지
코린나 벨츠 감독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5년 뒤셀도르프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전을 보러 갔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히터가 쾰른 대성당의 큰 남향 창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맡았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 작업과정을 찍으려고 그와 접촉했었다.
-이전에도 예술가나 예술계와 개인적인 관련이 있었나. =원래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1992년엔 감독 샹탈 애커만에 관한 영화를 찍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른 삶> <또 다른 미국> <세 가지 소망> 등을 만들었다.
-촬영 중 어떤 점이 힘들었나.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관한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좀더 긴 장기 프로젝트도 참여할 생각을 비쳤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작업할지를 완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그냥 시험삼아 해보았는데, 처음엔 그런대로 큰 문제없이 잘 흘러갔다. 물론 중간중간 리히터는 이 프로젝트에 의심을 품었고, 영화에도 그런 순간들을 잡아내서 보여준다. 리히터가 그의 추상화 시리즈를 시작할 때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란 게 원래 그렇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