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뽀로로’가 있다면, 미국에는 ‘엘모’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TV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머펫(팔과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인형) 중 하나인 엘모는 전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국제적인 캐릭터다. 콘스탄스 마크스의 다큐멘터리 <Being Elmo: A Puppeteer’s Journey>(이하 <빙 엘모>)는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출연 분량이 제일 적었던 머펫 엘모를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존재로 만든 남자, 엘모에게 숨결을 불어넣은 남자, 케빈 클래시의 전기를 다룬 영화다.
<빙 엘모>는 80분이 조금 안되는 짧은 다큐멘터리다. 볼티모어 출신의 TV를 좋아했던 소년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우피 골드버그의 내레이션으로 바쁘게 소개된다. 1969년 9살이었던 케빈 클래시는 미국에서 갓 방영을 시작한 <세서미 스트리트>와 브라운관을 통해 처음 만났다. 짐 헨슨과 프랭크 오즈가 조종하는 머펫 ‘버트’와 ‘어니’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소년은 그로부터 1년 뒤, 아버지의 검은색 털코트를 뜯어 생애 첫 머펫을 만들었다. 홀린 듯 인형을 만들고 난 뒤 꾸지람을 기다리던 소년에게 돌아온 아버지의 첫마디는, “그래, 인형 이름은 뭐냐?”였다. 그 뒤 클래시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80개가 넘는 머펫을 만들었고, 어머니의 탁아소에 맡겨진 동네 꼬마들 앞에서 인형극을 펼쳤다. 평범한 십대 소년이라면 미식축구와 자동차에 열광했겠지만 클래시는 달랐다. 인형을 만들었고, 인형과 대화했고, 캐릭터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클래시는 이미 볼티모어 최대 시청자를 보유한 <채널2>의 인기 프로그램에 그가 직접 만든 머펫으로 고정 출연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클래시의 경력은 승승장구의 연속이다. 볼티모어를 떠나 뉴욕 전국 방송사로 직장을 옮겼고 <캡틴 캥거루> <그레이트 스페이스 코스터> 등 인기 TV시리즈를 거쳐 마침내 <세서미 스트리트>에 안착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조금은 과격한 캐릭터였던 엘모와 만나며 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만나면 안기고, 헤어질 때 또 안기고, 뽀뽀하는 엘모(와 클래시)는 순식간에 유명해져서 배우, 코미디언, 정치인 등 유명인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엘모의 활약 뒤에는 일이 바빠 하나뿐인 딸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주지 못한 아버지 클래시의 부끄러운 모습이 남겨진다. “진짜 사람을 만든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클래시는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내가 머펫을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빙 엘모>는 2011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뒤 미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순회하며 많은 관객과 만났다. 10월21일 뉴욕과 11월4일 LA, 각각 1개관에서 단관개봉을 앞두고 있다.
엘모를 통해 많은 사연 접했지
<빙 엘모>의 콘스탄스 마크스 감독
-케빈 클래시와는 어떻게 만났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계기가 있나. =남편인 제임스 밀러가 프리랜서로 <세서미 스트리트>를 촬영하러 갔다온 날 커다란 가방을 얻어왔다. 엘모 인형이며 엘모가 그려진 티셔츠 등이 들어 있었다. 가방에서 마지막에 꺼낸 비디오테이프에는 케빈이 엘모가 되어서 촬영한, 우리 딸을 위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있었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제작, 연출까지 담당하는 사람이 이런 일에 시간을 내준 것에 감동했고, 그 뒤 남편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나의 소망을 전해줬다. 그날 남편은 케빈의 매니저 명함을 얻어왔고, 그 뒤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영화를 보면 엘모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 이상인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신발에, 노트에, 풍선까지 어디에나 엘모가 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나는 엘모가 그려진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그 가방을 보고 말을 걸어온 사람들과 나눈 대화만으로도 엘모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멈춰서는, 병으로 잃은 어린 딸이 마지막까지 엘모 인형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이야기해줬다. 엘모가 새겨진 딸의 비석 사진도 보여줬는데, 가슴이 먹먹해서 침을 삼킬 수 없었다.
-제작기간이 4년 가까이 된다. 만들면서 어려움이 많았나. =셀 수 없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비였다. 케빈을 쫓아 3년을 촬영하고도 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행히 제작비 모금을 도와준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고, 그는 <빙 엘모>의 제작자까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