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복서에 전과자인 ‘후진’ 남자가 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시력마저 거의 상실한 ‘착한’ 여자도 있다. <오직 그대만>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생수 배달로 생계를 연명하던 철민(소지섭)은 밤에 주차장 관리 일을 새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전임자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시각장애인 정화(한효주)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불행과 위기가 반복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정화의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철민은 위험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온다.
모든 장면이 그림이다. 한효주와 소지섭인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두 사람이 화면에 잡히는 매 순간이 반짝인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우려는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화면, 혹여 그것뿐인 건 아닐까. 아무리 보석 같은 선남선녀라 해도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없다면 2시간은커녕 10분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요는 장면이 아닌 연결의 문제. <오직 그대만>의 성패는 배우들의 존재만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 감성적일 화면들을 어떻게 엮어갈 것인지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송일곤 감독의 신작이란 사실은 의외인 동시에 일말의 기대를 품게 한다.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깊이있는 영상을 선보였던 송일곤 감독의 그림자는 같은 멜로 장르라도 무언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낼 것이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드디어 공개된 영화는 헛된 기대를 무참히 깨고 그야말로 정공법으로 멜로드라마를 관통한다. 이야기는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통속적이다. <오직 그대만>은 여기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여러 매체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듯 정통 멜로를 표방하며 50, 60년대식 통속적인 감성을 되살리고자 만들어졌다. 여기서 몇 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정통과 통속. 그리고 과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직 그대만>은 통속적임이 분명하지만 거기에 갇히진 않았다.
대개 멜로드라마는 크게 두축으로 돌아간다. 공감과 환상. 관객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한 채 환상을 보고 주인공의 역경과 시련에 반응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것이 해피엔딩이건 비극이건 결말은 중요치 않다. 장애를 통한 한줌의 눈물. 정치적인 관점이든 감성적 접근이든 상관없이 눈물을 짜내는 그 과정이야말로 멜로드라마의 핵심이다. <오직 그대만>의 강점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의 감성은 그야말로 예스럽고 아름답게 그려진 유리병 속 순수한 사랑은 정치적으로 위험해 보인다. 가난한 자는 마음이 깨끗할 거라는 오해는 어쩌면 상류사회에 대한 몽상보다 더 위험하다. 이를 두고 동화에 머문 영화, 염세적 도피라 혹평하기는 쉽다. 그러나 <오직 그대만>은 전혀 다른 곳에서 빛을 발한다. 어쩌면 고리타분한 멜로드라마를 복고했을 뿐인 이 영화가 성취한 가장 놀랍고도 모순된 지점. <오직 그대만>은 절제의 멜로드라마다.
멜로드라마의 기본은 과잉에 있다. 스크린 속 천사들은 눈물을 쥐어 짜내는 법을 익히느라 멈추는 법을 배울 틈이 없었다. 하지만 <오직 그대만>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카메라를 살짝 돌리고 한 호흡 쉰다. 이 세련된 연출이 <오직 그대만>을 살린다. 소지섭의 환상적인 근육이나 한효주의 청초하고 싱그런 미소가 반드시 등장하긴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스토리가 더이상 진부할 수 없을 만큼 뻔할지언정 그것을 풀어내는 호흡은 실로 차분하다. 이야기도, 화면도, 설정도, 소재도 과잉이지만 그것을 알기에 연출만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구구절절 늘어놓고싶을 법도 한데 잦은 생략과 절제로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낸다. 정통이란 검증된 방식이고 통속이란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눈높이다. 결국 언제나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시나리오가 아닌 감독의 절제된 연출과 배우들의 설득력있는 연기에 있다. 사진만으로도 흡족한 배우들이 펼친 절절한 연기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비현실적인 ‘캔디’와 ‘행복한 왕자’ 캐릭터에 피와 살을 입히는 것은 온전히 배우들의 힘이다. 아쉽고 부족하고 신선하지 않을지라도 흐르는 눈물 한 방울. 그러나 분해할 필요 없다. 그 눈물 한 방울의 값은 결코 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