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판 모르는 남녀가 함께 살면서 ‘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체인지 어드레스>의 남자 다비드(에마뉘엘 무레)와 여자 안느(프레드릭 벨)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호른 연주자 다비드는 방세를 함께 낼 룸메이트를 구하던 중 우연히 안느를 만난다. 안느 역시 같은 이유로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서로 마음이 맞다고 믿은 두 사람은 안느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처럼 ‘쿨’한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렴, 피 뜨거운 젊은 청춘들이 아닌가. 어느 날 두 사람은 자신의 짝사랑을 서로에게 하소연하다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친구와 연인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며 점점 쿨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기는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동거 라이프’쯤 돼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또 다른 커플을 등장시켜 다비드와 안느 사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안느의 제안으로 다비드는 평소 좋아하던 제자인 19살 소녀 줄리아(파니 발레트)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결국 다비드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나 싶더니 갑자기 둘 사이에 줄리앙(다니 브리양)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다비드와 줄리아가 숙소로 돌아가던 중 줄리아가 소매치기를 당하게 되는데, 줄리앙이 이를 발견하고 소매치기를 잡아준 것이다. 누가 봐도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줄리앙은 금세 줄리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얽히고설킨 4각관계(?) 속에서 다비드는 자신도 모르게 안느의 빈자리를 절실하게 느끼고 안느 역시 다비드를 그리워한다. 재미있는 건 영화 속 인물들이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소심남녀들이라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 생각과 다른 말들이 인물 사이를 오가며 묘한 감정을 형성하고, 이 감정이 인물의 관계를 밀고 당긴다. ‘진심은 통한다’는 영화의 주제는 다소 빤하긴 하지만 <체인지 어드레스>는 인물들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직접 주인공 다비드를 연기한 에마뉘엘 무레 감독은 데뷔작 <베뉘스와 플뢰르>부터 <쉘 위 키스>(2007), <사랑의 묘약>(2009) 등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작품에서 직접 연기를 겸했다. 안느 역을 맡은 프레드릭 벨은 <체인지 어드레스>로 데뷔해 <쉘 위 키스>등에서 에마뉘엘 무레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신예 배우인데, 에마뉘엘 무레 감독의 뮤즈라고도 불린다. 줄리아 역의 파니 발레트와 줄리앙 역의 다니 브리양 역시 에마뉘엘 무레 감독의 단골 배우다. 영화는 제5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이자 제19회 도쿄국제영화제 그랑프리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