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에서 침착하게 검은 머리 끈을 묶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에서는 전혀 침착할 수 없었다. 호주에 살던 나로서는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디기가 두려웠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도 연극계에 있던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 눈에 띄어서였으니까.
-<트와일라잇>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는 당신이 벨라 역을 맡아주길 바랐다고.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를 한 뒤여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3부작이나 되는데 덜컥 맡았다가 나중에 후회하긴 싫었다. 원래 한 군데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리고 벨라에겐 어딘지 소심한 구석이 있는데 내겐 없는 기질이다.
-회복기를 가지고 싶었다면 <써커 펀치>는 다소 과격한 선택이 아닌지. =베이비돌은 원래 아만다 시프리드에게 갔던 역이다. 그녀가 <HBO> 시리즈 <빅 러브> 스케줄과 겹쳐서 빠지는 바람에 내게 기회가 온 거다. 그 영화를 하면서 5시간씩 주6일 동안 트레이닝을 받았다. 몸을 움직이니 좋더라. 끝나고 1주일 뒤에는 곧바로 <슬리핑 뷰티> 촬영이 시작됐는데 몸에 대한 자신감, 자유로움이 생겨 있었다.
-전작과 반대로 <슬리핑 뷰티>에서는 죽은 듯 잠든 모습이 아름답더라. =카메라 앞에서 나신으로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냐고 많이들 물어보더라. 전혀 아니었다. 다 명상의 힘이다. 에밀리 브라우닝으로부터 루시라는 인물을 분리할 수 있었다. 난 캐릭터 뒤에 숨어 있으면 됐다.
-당신이 본 루시는 어떤 인물인가. =그녀는 주변을 의식하면서도 외부의 힘에 자신을 내맡긴다. 순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삐딱한 시선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다린다. 그녀는 내 또래 소녀들이 흔히 그렇듯 무모하다. 아니, 거의 마조히즘적이다. 그런 점이 날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