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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힘내라 아시아!
문석 2011-10-17

오랜만에 정말 즐거웠다. 부산국제영화제 말이다. 올해는 운 좋게도 영화를 꽤 많이 봤고 영화인들과 반가운 만남도 여러 차례 가질 수 있었다(그 후유증이 영화를 갉아먹긴 했지만).

영화제가 행복하다고 영화까지 행복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이번 부산영화제의 영화들은 아시아가 맞닥뜨리고 있는 불행한 현실을 보여줬다. 특히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던 3·11 대지진은 부산에까지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소노 시온의 <두더지>는 ‘포스트 3·11’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다.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3·11 대지진의 절망적인 풍경으로 시작해 이 풍경으로 끝을 맺는다. 이 거대한 재앙의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주저앉게 만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야릇한 희망의 실낱을 뿌린다.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만화 주인공 스미다와 달리 영화 속 스미다는 맞고 터질수록 단단해지는 느낌을 준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들려오는 “간바레(がんばれ, 힘내) 스미다!”라는 외침은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3·11의 무거운 기운은 <미츠코, 출산하다> <기적> 등에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지만 이들 영화 또한 애써 희망의 싹을 찾으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이와 관련해 영화제에서 만난 한 일본 친구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3·11은 아직도 일본인의 마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9·11 이후 외부의 적을 상대로 싸웠던 미국과 달리 우리는 내부의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나도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건 대단한 변화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여전히 절망감을 품고 있긴 하지만 자기반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한다는 얘기다. 비참한 현실을 작고 여린 몸뚱이로 온전히 받아내려 했던 <두더지>의 스미다처럼 말이다. 한동안 침체한 듯 보였던 일본영화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지 모르겠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예술의 광채가 더욱 빛을 내기 마련이니까.

한국영화에서는 가족의 붕괴라는 키워드가 두드러졌다. <가시>는 ‘포스트 IMF 시대 88만원 세대의 가족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느껴졌고, <밍크코트>는 종교와 가족이라는 문제를 날카롭게 연결해냈으며 <바비>는 입양문제를 도발적으로 다룬다. <미스 진은 예쁘다>는 가족 붕괴 뒤 의사가족을 보여주며 <돼지의 왕> 또한 가족을 포함한 모든 관계의 종말을 보여줬다. 어쩌면 이 또한 한국사회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결과이리라. 다른 아시아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가난, 범죄, 부패, 억압, 폭력 등 아시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영화들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건 아시아가 여전히 힘들다는 것과 동시에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부산영화제는 아시아가 서로의 현실을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공유하고 연대한다는 의의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시아여, 힘을 내자. 분투하자. 간바레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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