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빠’는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은 충격이었다. 예고된 죽음이라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잡스가 아닌 다른 이- 팀 쿡이 처음으로 아이폰 신제품을 소개한 다음날이라니, 삶의 아이러니가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이 이상한 기분의 대부분은 아마도 그의 연설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그 유명한 2005년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말이다. 몇년 전 영어학원을 다닐 때 그의 연설을 담은 비디오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3개월 동안 남은 거라곤 그 몇 시간짜리 강의뿐이다(그러니까 너무 비싼 학원 다닐 필요 없단 말이다 ㅠㅠ).
이 연설은 3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고 대학을 중퇴한 뒤 매킨토시를 만들었던 사연을 담은 첫째 이야기 ‘점들을 연결하기’, 애플에서 쫓겨나 다시 돌아갈 때까지를 설명한 두 번째 이야기 ‘사랑과 손실’도 좋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가장 감동받은 대목은 ‘죽음’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이 암 선고를 받은 뒤 수술을 통해 재활에 성공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이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건 다른 사람이 사고한 결과물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만든 소음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잠식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에 따를 용기를 가지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연설의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그는 어릴 적 매료됐던 “페이퍼백 형식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지구대백과사전>(The Whole Earth Catalog)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1970년대 중반 발간된 이 잡지 마지막 호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담겨 있었다면서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계속 갈구하고 계속 (바보처럼) 정진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저는 이 격언을 되새겨왔습니다.”
정말 울컥했다. 뻔한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불행과 시련을 겪을 만큼 겪은 뒤 그것을 용기와 끈기로 극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한 천재 또는 한 부자의 죽음이 아니라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뜨거운 한 인간의 죽음을 추모하고 싶다.
ps1. <씨네21>에 신입 기자가 들어왔다. 올해 영화평론상 당선자인 이후경 기자가 그 주인공이다. 아직 어리바리하지만 머지않아 무섭게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 친구다. Stay Hungry, Stay Foolish하길 바란다.
ps2. 10월7일부터 <씨네21> 스마트폰 어플이 서비스를 시작한다. 잡지의 내용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극장예매 기능이나 오락적인 기능도 갖췄다. 부디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