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상담 붐이다. 지면매체부터 방송에 이르기까지, 연애부터 인생의 허무, 재테크까지 모두 상담해준다. 그중 최근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프로는 바로 MBC 라디오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팟캐스트로만 서비스되는 딴지라디오의 <나는 꼼수다>의 인기와 더불어 팟캐스트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프로의 고정 출연진 중 가장 귀에 띄는 사람은 철학박사 강신주(뭐든 다 상담해주는 ‘다 상담’ 코너에 출연)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들보다 과감하고 단호하다. 개인적으로는 강신주의 상담을 들을 때마다 몹시 웃게 되는데, 들을 때마다 ‘아아, 가차없구나, 철학적인 인간이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강신주의 상담을 좋아하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상담에는 가출 아니면 출가밖에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 늘 답은 하나다. 정신적이고 경제적인 의미에서 오프로드 여행을 떠날 것, 가족에게서 독립할 것. 기껏 용기를 내 상담을 했더니 왼뺨 맞고 오른뺨도 맞고 걸친 것 다 벗겨져 냅다 패대기쳐지는 기분이라 얼떨떨한데, 그 가차없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응석은 이제 그만.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은 그 ‘가차없음’을 다시 생각하라고 권한다. 매서운 충고는 무정함이 아니라 깊은 사유의 산물이다. 세상을 바라보라, 생각하라, 그 세상을 감각하는 당신 자신을 응시하라. 시와 철학은 모두 그곳으로부터 탄생한다. 배운 대로 남들이 말하는 대로가 아닌 나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일.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에서 강신주는 감각에 호소하는 시어와 두뇌에 호소하는 철학의 언어가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참고로 이 책의 전작에 해당하는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도 있는데, 두 책의 내용이 즐거움과 괴로움으로 나뉘어 있지는 않다. 저자가 좋아하는 시인을 중심으로 <즐거움>이 먼저 쓰였고 그 후속작이 <괴로움>이라고 이름붙었을 뿐이다.
좋은 시를 소개하고, 그 시의 세계관과 연결된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이 책을 정성들여 읽으려면 시간이 만만찮게 필요하다. 일단 소개되는 시를 꼼꼼하게 읽으시라. 기껏해야 140자 길이의 글을 쓱 훑듯 읽어 버릇해온 독자라면 시 한편 읽기가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글로 문자를 꼭꼭 씹어라. 그리고 강신주의 다정한 시 해설을 읽으라. 그 다음에는 시와 연결지어질 수 있는 철학자의 사상을 읽으라(이 책의 최대의 강점은 까다로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참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시와 더불어). 마지막으로는 ‘더 읽어볼 책들’을 소개하는데, 책 제목 아래에 실린 자세한 추천사 역시 일독할 만하다. 이 책의 부제는 무려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책 다 읽고 다시 보니 저 부제가 영 아니다 싶다. 이 책에 실린 시들에, 철학에, 그들을 낳은 이 세상에 ‘유쾌함’만큼 안 어울리는 수식어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