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돌아온 한철민(장혁)은 아내 서정아(유다인)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다. 안민호(박희순) 검사는 한철민이 평소 의처증을 앓아왔으며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결국 죽였다고 단정한다. 문제는 사체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지문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조차 남기지 않았다. 강성희(하정우) 변호사는 살인사건의 결정적 단서인 CCTV 자료를 검찰이 빼돌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법정 싸움에 뛰어든다.
법정극은 검찰과 변호인이 엎치락뒤치락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의뢰인> 역시 법정극의 기본 구조를 무시하진 않는다. 애증의 관계인데다, 서로가 즐겨 쓰는 수와 패를 이미 읽고 있는 안민호와 강성희는 룰을 어기면서까지 미끼를 던지고 함정을 판다. 다만, 사건현장의 CCTV, 피해자의 통화기록, 피고의 알리바이 등에 관한 정보만을 뒤쫓다간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릴 수도 있다. 참고로 <의뢰인>은 산탄총처럼 단서들을 흩날리는 영화다. 모든 탄환은 단 하나의 표적지를 향하고 있는 듯 보이나 정작 어떤 탄환이 목표물을 명중할지 확신할 수는 없다. 강성희와 안민호의 갈등을 참을 증명하기 위한 귀납과 연역의 대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다”면 이 다툼의 승패를 가리기란 어렵다. 이쯤에서 “저 정말 믿으세요?”라는 한철민의 반복되는 질문을 상기해보자. 한철민의 질문 속엔 “내가 만약 거짓말을 한다 해도”라는 또 하나의 질문이 숨겨져 있다. 패러독스를 피하려면 믿음이 필요해진다. <의뢰인>의 법정은 후반부에 들어서면 추론 대신 믿음이라는 감정에 의지한다. 진실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호소되는 것이다.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도 그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