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송새벽)은 걸핏하면 자살을 시도한다. 넥타이로 목을 매고,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고, 그러나 그의 선택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난다. 효리(한예리)는 남자친구에게 실연 통보를 받은 얼마 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진다. 고향에 내려가 몸을 추스른 뒤 효리는 다시 상경하지만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수혁(이주승)은 할아버지가 죽자 커피 가게를 정리하고 리스본으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수혁은 할아버지를 몸져 눕게 한 남자를 길에서 우연히 발견하자 둔기를 들고 그의 뒤를 쫓는다.
세 사람은 모두 과거의 어떤 죽음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다. 그래서 한철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고, 효리의 ‘몸’은 복구되지 않고, 수혁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 다만, 이들이 고통과 대면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한철은 아내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을 껴안기 위해 한철은 삶을 부정한다. 반면 효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사고로 인해 효리는 아버지를 불쑥 떠올리지만 이내 그가 못된 아버지였고, 형편없는 가장이었다고 규정한다. 수혁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위하나 고통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피하지 못한다. 한철의 장광설과 효리의 악몽과 수혁의 분노가 그 자체로 이목을 잡아끄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붙들린 세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삶이 일정한 의미를 획득하는 건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다. 서로 다른 시간의 축 위에서 전개되는,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는 세 사람의 안간힘은 결국 각자의 평범한 날들을 파괴하는 비극적 상황을 낳는다. 놀라운 사실은 파국의 끝에서야 그들이 웃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웃을 때 우리가 운다.